헤이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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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케 이야기》(일본어: 平家物語 (へいけものがたり) 헤이케모노가타리[*])는 가마쿠라 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헤이케(平家, 다이라 씨)의 번영과 몰락을 묘사한 일본의 군기 문학이다.

호겐의 난·헤이지의 난에서 승리한 다이라 씨와 패배한 미나모토 씨(源氏)의 대조, 그 뒤에 벌어진 겐페이 전쟁에서 다이라 씨의 멸망까지를 좇아가는 줄거리로, 몰락하기 시작한 헤이안 귀족들과 새로이 대두한 부시들을 적절하게 짜넣어 인간 군상을 잘 묘사해내고 있다. 와칸 혼효문(和漢混淆文, 히라가나와 한자훈독체가 혼용된 문장체)으로 쓰인 대표적인 작품이며, 평이하고 유려한 명문으로 서두의 문구 같은 유명한 구절은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서두 문구 원문[편집]

平家物語 巻第一 헤이케 이야기 권 제1

第一句 祇園精舎 ぎおんしょうじゃ 제1구 기원정사

祇園精舎の鐘の声 기원정사(祈園精舍)의 종소리
諸行無常のひびきあり 제행무상의 울림 있으니
沙羅双樹の花の色 사라쌍수의 꽃의 빛깔
盛者必衰のことわりをあらはす 성한 자 필히 쇠한다는 이치를 드러낸다
おごれる者も久しからず 교만한 자도 오래가지 못하고
ただ春の夜の夢のごとし 단지 봄날 밤의 꿈과 같으며
たけき者もつひには滅びぬ 강한 자도 마침내는 멸망하니
ひとへに風のまへの塵におなじ 오로지 바람 앞의 티끌과 같도다


개요[편집]

성립[편집]

'헤이케 이야기'라는 제목은 후대에 붙여진 제목으로 원래는 《호겐 이야기》나 《헤이지 이야기》처럼 헤이시와 겐지의 전투가 본격화된 지쇼(治承) 연간의 시점에서 딴 '지쇼 이야기(治承物語)'로 불렸다는 설이 있으며,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대략 닌지(仁治) 원년(1240년)에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家)가 필사한 《헤이한키(兵範記)》[1]의 이면 기록 가운데 "治承物語六卷號平家候間, 書寫候也"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말한 "治承物語"가 정말 현존하는 《헤이케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확답은 어렵다. 다만 엔케이본(延慶本)이 성립된 엔케이 2년(1309년) 이전에는 현존하는 《헤이케 이야기》의 형태가 성립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편집]

저자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설이 존재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의 《쓰레즈레구사(徒然草)》226단으로 여기에는 고토바인(後鳥羽院) 시절 시나노노젠지(信濃前司) 유키나가(行長)라는 인물이 《헤이케 이야기》의 작자이며 그는 '쇼부쓰(生佛)'란 맹인에게 헤이케 모노가타리를 가르쳐 읊게 했다고 한다. 그는 토고쿠(東國) 출신으로 무사나 전투 이야기는 쇼부쓰로 하여금 무사에게 물어 기록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며, 쇼부쓰 후세의 비파법사들과의 관련까지 《쓰레즈레구사》는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데, 시나노노젠지 유키나가라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당시의 구교였던 구조 가네자네(九條兼實)을 섬겼던 케시(家司)인 츄나곤(中納言) 나카야마노 아키토키(中山顯時, 후지와라씨)의 손자라 전하는 시모쓰케노카미(下野守) 후지와라노 유키나가(藤原行長)라는 주장이 있다. 또한 《손피분먀쿠(尊卑分脈)》나 《다이고잡초(醍醐雜抄)》·《헤이케 이야기·보궐(補闕) 쓰루기노켄(劍卷)》에는 마찬가지로 아키토키의 손자인 하무로 토키나가(葉室時長)를 작자라 밝히고 있다. 보통 후지와라노 유키나가설에서는 시나노노젠지란 시모쓰케노노젠지의 오기로 해석하지만, 《쓰레즈레구사》에서는 시나노노젠지 유키나가를 '시나노노뉴도(信濃入道)'라고도 적고 있다.

때문에 시나노에 연고가 있는 인물이자 신란(親鸞)의 수제자로서 호넨(法然)의 문하에서 수행했다는 사이부쓰(西佛)이라는 승려를 《헤이케 이야기》의 저자로 보는 설이 있다. 사이부쓰는 오오타니 혼간지나 코라쿠사(康樂寺, 일본 나가노 현 시노노이 시오자키)의 연기설화에 따르면 시나노의 명족 시게노씨의 후손인 운노소타로(海野小太郞) 유키치카(幸親)의 아들로 그의 속명이 유키나가(幸長, 또는 미치히로通廣)로서, 《헤이케 이야기》에도 '다이후보 가쿠메이(大夫坊覺明)'란 이름으로 기소 요시나카(木曾義仲,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참모로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다만 운노 유키나가나 가쿠메이, 사이부쓰를 동일인물로 보는 설은 단지 전승일 뿐 사료적인 증명은 아직 없다.

이본(異本) 및 제본(諸本)[편집]

  • 눈 먼 승려로서 알려진 비파법사가 일본 각지를 돌며 입으로 전승해 온 것
  • 읽을 거리로서 증보된 문서 계통의 것

전자의 것은 야사카(八坂)계 제본과 이치방(一方)계 제본으로 나뉘는데, 야사카계 제본은 헤이케 4대의 멸망으로 끝나는 이른바 '단절 헤이케' 12권본이다. 이치방계 제본은 단노우라 전투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출가한 겐레이몬인(建禮門院)이나 그 시녀들이 염불로 헤이케의 명복을 빌며 여생을 보냈다는 '관정권(灌頂卷)'이 따로 더 설정되어 있다.

또한 비파법사가 비파를 연주하며 읊었던 구비문학 장르를 '헤이쿄쿠(平曲)'라 부르는데, 마디를 붙여 노래하며 그 내용이 서사적이므로 '노래한다'기보다는 '말한다'고 하는 것이 더 가깝다. 《헤이케 이야기》를 읊을 때 쓰는 비파를 '헤이케 비파'라 부르는데, 구조는 보통의 음악 연주용 비파와 같으나 그것보다는 다소 작은 것이 많이 이용된다. 덧붙여 근세 이후에 성립한 사쓰마 비파(薩摩琵琶)나 치쿠젠 비파(筑前琵琶)에서도 《헤이케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은 곡이 다수 작곡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이걸 헤이쿄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주석[편집]

  1. 호겐의 난에 참전했던 다이라노 노부노리(平信範)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