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옥
허황옥(許黃玉, 33년 ~ 189년)은 가락국의 초대 왕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한다. 본래 인도 야유타국의 공주로, 48년에 오빠 장유화상 및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야에 와서 왕후가 되었다.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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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관련 작품
[편집] 드라마
[편집] 불교 전파설
일설에는 가야의 불교 전래에 기여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허황옥과 그녀의 친정 오빠 장유화상이 가야 지역에 불교를 처음 전래했다는 설이 있다. 불교의 승려였던 친정오빠 장유화상은 금관가야 지역에 장유암(長游庵)이란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셨으며 이후 가야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암(長游庵) 경내에는 장유화상사리탑이 현존하고 있다.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1983년 7월 20일 경남도 문화재자료 31호로 등재되었다.
[편집] 중국 도래설
인도의 야유타국에서 오지 않고 아요디야 이민자들이 거주하던 지금 중국 쓰촨성 안악현에서 건너왔다는 설도 있다.[1] 인도의 도시국가였던 아요디아는 태국에도 아유티야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하였고, 중국 서남부 쓰촨성 주변에도 건너와 이민촌을 건설하였다.[2]
안악현 근처에 보주 라는 마을이 있으며, 쓰촨성의 안악현과 보주 지역은 허씨(許氏)들의 집성촌이자 아요디야에서 이민온 인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다. 인도계 이주민 중 고위직에 오른 인물 중에는 당시 한나라의 황제 선제의 후궁이 된 허씨가 있었다. 선제의 장인에 해당되는 평은후 허광한도 쓰촨성 출신으로, 허황옥 역시 그의 일족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편집] 기타
그녀는 10명의 아들 중 2명에게 허씨 성을 쓰게 해달라고 수로왕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모친의 성을 따라 허씨 성을 사용하던 두 왕자로부터 한국의 허씨 성이 유래되었다.
그녀의 나이(156살)은 수로왕과 9살 연상의 나이차로, 수로왕의 나이(157살)와 함께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는 가야사람들이 자신의 시조에 신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자 과장된 표현이 있던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편집] 가족
10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다. 이 중 남편인 태조 수로왕에게 청하여 2명의 아들은 자신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 성을 쓰게끔 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수로왕의 동의를 얻으니 2명의 아들은 허씨 성을 쓰게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1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 아버지 : 허장상
- 남편 : 태조 김수로왕(太祖首露王, 42년? ~ 199년, 재위 42년 ~ 199년)
- 아들 : 거등왕
- 손자 : 마품왕
- 아들 : 7명
- 아들 : 2명, 어머니 허황옥의 성을 따라 허씨 성을 쓰게 되었다. 이 2형제가 허씨(許氏)들의 선조가 되었다.
- 딸 : 1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수로왕과 허황옥에게는 1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 친정오빠 : 장유화상(長遊和尙, 다른 이름은 보옥선인(寶玉仙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