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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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신서 복사본

해체신서》(解體新書, 일본어: 解体新書 (かいたいしんしょ) 가이타이신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번역 의학서로, 독일 의사 쿨무스의 《해부도보》(Anatomische Tabellen)라는 책의 네덜란드어판인 《타펠 아나토미아》(Ontleedkundige Tafelen)를 일본어로 중역한 것이다. 서양서적 완역으로는 일본 최초인 책이다. 번역 총 책임자는 스기타 겐파쿠였으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스하라야 이치베라는 간행소에서 출판하였으며, 문체는 일본한문체이다.

번역 과정[편집]

스기타 겐파쿠는 빠른 판단력을 가진 의사였지만 네덜란드어 실력은 없었다. 역시 타펠 아나토미아를 보고있었고 네덜란드어를 초보수준으로 알고있던 의사 마에노 료타쿠, 동향의 후배 의사 나카가와 쥰안과 의기투합하여 번역을 결의한 것이 1771년이었다. 그들은 사형수의 시체해부 광경을 보고 타펠 아나토미아의 해부도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번역을 결정했다. 번역의 리더는 연장자이자 네덜란드어를 알고있던 마에노 료타쿠였다.

글을 모르는 그들은 먼저 도판에 주목했다. 도판에 있는 단어들과 인체의 위치를 이용해, 그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추리하듯 찾아나갔다. 그리고 문법적인 요소는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모르는 채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추상적인 어휘들은 유추를 통해 의미를 파악했다. 예를들어 '코는 후루헷헨도'다. '나뭇가지를 잘라 쌓으면 후루헷헨도', '마당을 쓸면 먼지가 쌓여 후루헷헨도'라는 설명을 어설픈 사전이나 어휘집에서 발견하여 '후루헷헨도'의 의미를 솟아오르다, 봉긋하다(堆)로 정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모두 번역하는 것이 힘들어서 먼저 도판을 그리고 나중에 본문을 번역했고, 각주는 후일로 미뤄두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반응도 보기위해 도판을 먼저 '해체약도'(1773)라는 이름으로 간행했다. 이것은 소비자의 반응을 보기 위함과 막부의 반응을 보기 위한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여기서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후 해체신서 전체를 간행하는데 그러면서도 책을 막부에게 헌상하여 이후 문제가 될 소지를 막았으며 이는 전적으로 스기타 겐파쿠의 생각이었다.

해체신서의 주된 번역자는 마에노 료타쿠였지만 그는 완벽하지 않은 번역이라 하여 번역자로 이름 올리길 거절하였다. 겐파쿠는 급한 마음에 출간에 목표를 두었지만 료타쿠는 천성이 차분한 학자여서 그러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런 식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료타쿠는 책의 서문을 대신 써줄 통역사 요시오 고자에몬(吉雄幸左衛門)에게 직접 부탁하여 책의 서문이 마련되었다. 이렇게 하여 1774년에 해체신서가 출간되었다.

경과[편집]

출간되자 난의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한방의들의 비난을 받았다. 스기타 겐파쿠는 해체신서를 옹호하기 위해 문답집 '광의지언'까지 썼다.

이후 겐파쿠는 에도 제일의 의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각지에서 환자가 몰려들어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그는 다수의 제자를 배출해 난학과 난의를 확산시켰고 노년까지 유복하게 보내게 되었다.

해체신서를 만들면서 일본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거의 한자어로 조어되었으며 신경, 연골, 동맥같은 것은 오늘날에 다른 한자문화권에 퍼져 쓰이고 있는 예이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