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대장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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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 보관중인 팔만대장경

해인사 대장경판(海印寺大藏經板) 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국보 제32호로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있으며, 고려몽골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아내고자 고종 23년(1236) 강화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동왕 38년(1251)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이다. 1995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다.

역사[편집]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외침(外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을 추진했다.[1]

제1차는 거란의 침입으로 곤경에 직면했을 때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도감(都監)을 두고, 《대반야경(大般若經)》·화엄경(華嚴經)》·금광명경(金光明經)》·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6,000여 권을 조조(彫造)하였다.[2] 현종 때 시작하여 문종 때 완성된 이 초판 고본(古本) 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의 몽골 침입 때 불타고, 일부가 일본에 전한다.[2]

그 후 의천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에서 가져온 불경(遼) · 일본에서 수집한 불경의 총목록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차례로 만들었다.[2] 이것이 이른바 속대장경(續大藏經)으로 1,010부(部) 4,740여 권에 달하였으나, 몽골의 병화로 거의 없어지고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2]

그 후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대대적인 조판 사업이 진행되었다.[3] 동왕 23년(1236) 강화도장경도감(藏經都監)을 설치하여 사업에 착수, 동왕 38년(1251) 총 81,137매(枚)의 대장경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으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3] 대장경의 조판으로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에 큰 공헌을 하였다.[3] 현재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까지 합하여 총 81,258판(板)이나 된다.[4]

치수 및 재질[편집]

경판의 개당 총 길이는 68 혹은 78센티미터이며 폭은 약 24센티미터, 두께는 2.7~3.3센티미터의 범위이다.

무게는 경판의 재질에 따라 4.4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3∼3.5킬로그램 정도이다.

경판의 재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왔으나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산벚나무돌배나무가 대부분이다.

문화재 지정[편집]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역시 그 과학적 기술의 탁월함으로 말미암아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팔만대장경판 역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다. 또한 팔만대장경 인쇄본도 강원도 평창군 등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고려대장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고려대장경 > 제1차 대장경간행,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3.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팔만대장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4. 고려대장경연구소 각종 자료마다 경판의 총매수, 경종류, 권수가 조금씩 다른 이유는 “보유판(補遺板) 포함여부”,“중복판 포함여부” 등 때문에 발생한 차이이다.

참고 문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