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비 전투
합비 전투(合肥戰鬪)는 209년과 215년 두 차례에 걸쳐 위나라 합비(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조조와 손권이 치열히 싸운 전투로 1차 전투는 손권의 패배로 끝났고 2차 전투는 조조와 손권의 승부가 나지 않은 무승부로 끝났다.
목차 |
배경 [편집]
당시 강동 지역의 손권은 208년 적벽 대전의 승리를 여세로 몰아 주유를 남군성으로 보내 조조의 장수 조인과 남군 전투를 치르게 했으나 오히려 주유는 함정에 빠져 부상을 입고 기습 공격으로 조인을 무찔렀으나 유비의 장수 조운에 의해 남군성을 빼앗긴다.
곧이어 형주성은 장비가, 양양성은 관우가 차례로 점령해 형주 지역을 빼앗기고 주유가 패배하자 손권은 방향을 바꿔 전 군대를 모아 허도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인 합비를 대공격한다.
| 제1차 합비 전투 | |||
| 날짜 | 후한 헌제 20년 209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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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한나라 합비(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 일대) | ||
| 결과 | 조조의 승리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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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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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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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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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전투 [편집]
- 삼국지 연의에서의 제1차 합비 전투
209년 주유가 남군 전투에서 대패하자 손권은 강동의 전 군대를 이끌고 합비를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도중 원군을 이끌고 온 노숙과 함께 의논을 하던 도중 조조의 장수 장료의 편지를 받고 분노해 합비를 공격한다.
합비성 앞에서 장료와 대치한 손권은 태사자를 내보내 장료와 맞서게 하고 이때 조조의 장수 악진이 손권을 노리고 공격하나 송겸과 가화의 도움으로 손권은 목숨을 건진다.
이에 밤을 틈타 태사자가 장료의 부하 과정과 후조와 내통해 기습 공격을 할 계획을 세우나 장료는 이를 눈치채고 과정과 후조를 심문 및 처형한 뒤 군사들에게 매복을 준비시켰고 결국 기습에 대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던 위군의 공격으로 오군은 크게 패하고 태사자는 독화살 4발을 맞고는 전사한다. 결국 손권은 군사를 거두어 남서로 돌아간다.
| 제2차 합비 전투 | |||
| 날짜 | 후한 헌제 26년 215년 | ||
|---|---|---|---|
| 장소 | 한나라 합비(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 일대) | ||
| 결과 | 사실상 무승부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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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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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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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전투 [편집]
215년 조조가 한중을 점령하여 익주의 유비가 위험해지자 제갈량은 계책을 내어 형주 동쪽 3군을 손권에게 내주고 손권과 조조를 싸우게 하는 계책을 편다.
손권은 조조가 여강 태수 주광을 시켜 합비로 가는 보급로인 환성에 주둔하자,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여몽과 감녕을 선봉으로 세우고 장흠과 반장을 후군으로 하며, 자신은 주태, 진무, 동습, 서성 등을 거느리고 중군을 이끌게 되었다.
손권의 10만 대군은 오늘날의 양쯔 강을 건너 화주를 점령한 뒤, 선봉장 여몽과 감녕을 시켜 환성을 함락시키고 여강 태수 주광을 죽인다. 손권은 손쉽게 환성에 입성하고 뒤따라 능통도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
이 소식은 합비를 수비하고 있던 장료에게로 전해져 장료는 악진, 이전과 함께 환성을 되찾을 작전을 세운다. 세워둔 작전대로 악진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군의 선봉인 여몽과 감녕을 막고 있는 동안 장료와 이전이 손권의 중군을 기습 공격했고 승리를 거둔다.
곧이어 손권의 대군과 기세에 놀란 장료는 더 많은 군사를 필요로 하여 부하 설제를 보내 조조로부터 도움을 청하고 조조는 유엽의 생각대로 한중을 하후연과 장합에게 맡기고 직접 본대 40만 명을 이끌고 합비로 간다.
이에 감녕은 기병 100기를 이끌고 조조의 영채를 기습 공격하고, 다음 날 능통은 악진과 맞서 싸우면서 조휴의 활에 맞아 죽을 뻔 하다가 감녕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다.
이에 조조는 전투가 오래끌자 모든 군대를 이끌고 대공세를 펼쳐 조조는 중로군을 거느리고 좌익 1로는 장료, 2로는 이전, 우익 1로는 서황, 2로는 방덕이 맡아 각기 1만 명의 군사를 주고 5로로 나누어 유수를 공격한다. 에디터의 주 - 이것은 전쟁에 들어가는 엄청난 재원 때문이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병사 고용비, 무기 및 방어구 제작 밑 유지, 말과 말먹이, 군량, 기치와 군복 그리고 전쟁에 필요한 물품들을 최전선으로 이송하는데 드는 비용 때문이다. 더군다나 군사를 움직이려면 전장의 후방에 있는 보급기지에 보급물품을 지키고 나르며 보급물자를 최전방까지 호송할 군사 또한 따로 필요하다.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재정적 부담은 늘 백성들이 져야하는 부담이다. 따라서 조조는 되도록 전쟁을 빨리 끝내려한 것 같다.
유수를 공격당하자 손권의 부하 서성과 동습이 작은 배에 군사들을 태우고 싸우지만 동습은 도중 배가 뒤집혀져 죽고 진무도 서성을 도우러 오다가 방덕을 만나 싸우다 전사하고 만다. 손권의 군대는 서황이 이끄는 군대의 협공을 받고 위험해진 손권은 얼마 안되는 군사를 수습해 겨우 탈출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태가 부상을 당했고 주태의 가상한 노력으로 서성을 구조한다.
조조의 군대는 손권의 군대를 겹겹히 포위해 대공격을 펼치치만 도중 손책의 사위 육손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합류하면서 크게 패하고 만다. 이후 손권은 유수에서 1달 이상 조조군과 대치했으나 이기지 못했고 결국 손권은 장소와 고옹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즐을 보내 조조에게 화평을 청한다.
이에 손권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손권의 군대 못지않은 피해를 입은 조조의 군대 역시 철수해 사실상 무승부로 끝난다. 이후 손권은 장흠과 주태에게 유수구를 지키게 하고 건업으로 돌아갔으며, 조조도 조인과 장료를 합비에 남아 지키게 하고 허창으로 돌아갔다.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의 차이 [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송겸과 태사자가 제1차 합비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송겸은 합비 전투 이후까지 살아남았으며 태사자는 206년에 사망했으며 태사자가 죽은 이후 적벽 대전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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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주요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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