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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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퇴당(韓頹當, 기원전 200년? ~ ?)은 중국 전한의 장군이다. 《한서》 고혜고후문공신표에서는 이름을 퇴당(隤當)으로 적는다.

생애[편집]

한왕 신의 아들로, 한왕이 기원전 200년에 흉노로 달아나 퇴당성(頹當城)에서 낳았기에 그 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다. 문제 시기에 형의 아들 한영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한에 투항해 문제 16년(기원전 164년) 6월 병자일에 궁고(弓高侯)에 봉해졌다.[1][2] 오초칠국의 난에서는 주아부의 명령을 받고 장수들과 함께 경기병으로 오·초의 양도를 끊는 작전에 참여했고, 제나라를 포위하고 있다가 진압군이 찾아가자 본국으로 돌아간 교서유앙을 꾸짖어 자결하게 했으며, 공적이 다른 장수들을 넘어섰다.[1][3]

시호는 (壯)[2] 혹은 장(莊)이다. 《사기》에서는 경제 전원년(기원전 156년)에 손자 한칙이 작위를 계승하고 원삭 5년(기원전 124년)에 후사 없이 죽어 궁고후국을 제했다고 한다.[4][5] 《한서》에서는 한칙이 원삭 5년에 작위를 계승했으나 후사 없이 죽어 궁고후는 단절됐다고 한다.[2] 이외에 서손으로 한언·한열을 두었다.

가계[편집]

각주[편집]

  1. 반고: 《한서》 권33 위표전담한왕신전제3
  2. 위와 같음, 권16 고혜고후문공신표제4
  3. 위와 같음, 권35 형연오전제5
  4. 사마천: 《사기》 권19 혜경간후자연표제7
  5. 단, 《사기》의 한신열전과 오왕유비열전에서도 오초칠국의 난에서 한퇴당의 행적은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에 경제 전원년에 한퇴당이 죽었다고 하면 상충된다.
선대
(첫 봉건)
전한의 궁고후
기원전 164년 6월 병자일 ~ ?
후대
(2대 후?) 손자 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