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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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韓成俊
기본 정보
출생 1874년 6월 12일

조선 충청남도 홍성군

사망 1942년 7월 (69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성부

국적 대한제국 대한제국
부모 한천호(부)
가족 백운채(외할아버지)
한영숙(손녀)
황병렬(손녀사위)
임방울(사돈)
직업 판소리 고수, 민속무용가
활동 시기 1881년 ~ 1942년

한성준(韓成俊, 1874년 6월 12일 ~ 1942년 7월)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 말기의 판소리 고수이자 민속무용가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충청남도 홍성 출생이다.[1]

박순조의 제자가 되어 북을 배웠으며, 북을 잘 쳐 명성이 높았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노래·민속 무용에도 뛰어났다.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고 검무(劍舞)·승무(僧舞)·남무(男舞)·한량무(閑良舞) 등 한국 고전무용을 후진들에게 전수했다. 1940년 '조선무용발표회'를 열었고, 1941년 일본의 '모던 니혼 사'가 제정한 '조선예술상' 중 무용 부문상을 탔으며, 만년에는 민속 무용에 전념하였는데 특히 학춤에 뛰어났다.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흩어져 있거나 사장되어 가는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여 계승·발전시킨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소속 [편집]

가족 및 친척 관계 [편집]

주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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