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화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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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화요리(韓國中華料理) 또는 한국식 중국음식은 중국의 중화요리가 기원이지만, 한국 고유 식재료 및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토착화된 한국식 중화요리를 말한다. 지리적으로 중국한국은 서로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식 중국요리는 중국 북방 요리(특히 산동요리)의 영향을 받았다.[1] 그러나 일부 한국식 중국요리는 중국음식이라기보다 한국 음식에 더 가깝다. 한국에서 짜장면은 대표적인 배달음식이며 중국식당의 모든 음식은 배달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역사[편집]

중국음식점의 등장[편집]

조선의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외식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중국 요릿집이 가장 먼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흔히 중국집이라고 부르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당이 아니라, 특수한 부유층만이 찾는 전통적인 중국식 식당이었다. 이때 중국식당은 보통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이 있고 2층에는 이 있었다. 술 접대를 하는 '기녀'가 있는 곳도 있었다. 요리도 짜장면이나 짬뽕 한 그릇이 아니라, 일정한 순서에 맞추어 제공되었다. 일제 강점기 경성부의 아서원, 금곡원, 대관원, 사해루 같은 중국 요릿집은 부유한 일본인조선인만이 드나들 수 있던 최고급 식당이었으며, 이들이 제공하는 음식은 중국 요리라고 불리기보다 청요리라고 불렸다. 중국전통에 따라 에서 '청요리를 불러 먹을' 수가 있었는데, 이것이 변형이 되어 배달 음식을 담는 '철가방'이 사용되게 되었다.

정치와 중국요리[편집]

1950년에서 1960년 사이 대한민국정치인들은 화교들이 운영한 중국 요릿집에서 밀실정치를 하곤 하였다. 정치인들이 중화요리 음식점을 좋아한 이유는 보안유지를 위해서였다. 코스별로 요리가 한 가지씩 나오는 중국 요릿집은 요리가 나오기전까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기 적당했으며, 식사 장소는 독립된 한 칸의 방이었다. 당연히 이야기한 내용이 밖으로 새나갈 위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유명했던 음식점은 서울에 아서관, 태화관, 대려도, 중화반점, 인천에 공화춘(지금은 건물만 남아있다.)등이 있었다.

한국식 중화요리[편집]

짬뽕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짜장면짬뽕 등의 한국식 중국요리는 대다수의 화교들이 살던 인천광역시에서 개발되었다. 현재 중국 음식점은 중국인보다 한국인들이 소유나 운영을 맡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화교가 다른 나라의 화교들과 다른 점이다. 한국식 중국요리는 코리아타운대한민국 영토 밖의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곳들로 옮겨갔다. 박정희 정권의 화교에 대한 인종차별을 피해 대한민국을 떠났던 화교들이 새로 정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대한민국 내 있는 대부분의 중화요리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품목은 아래와 같다.

  • 짬뽕: 고추기름양파로 맛을 낸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늘려 만든 국수를 넣은 음식이다. 짬뽕은 일본의 나가사키에서도 볼 수 있다.
  • 울면: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든 국수에 잘게 썬 채소해산물을 섞어 요리한 음식이다. 울면의 발음은 중국 음식 이름인 원루미엔(wēnlŭmiàn, 溫滷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 우동 우동은 일본 음식이나,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파는 우동은 일본식 우동과 매우 다르며, 오히려 울면이나 매운 맛이 없는 짬뽕에 가깝다.
  • 탕수육(糖醋肉): 탕수육은 돼지고기에 녹말 반죽을 발라 튀긴 뒤 달콤한 탕수소스를 얹어 먹는 음식이다. 다만 미국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탕수육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탕수육은 재료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모두 사용한다.

곁 반찬[편집]

한국의 중국음식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중국음식점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어느 집에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밑반찬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군만두, 단무지, 춘장양파(양파를 춘장에 찍어 먹는다), 김치가 있다.

참고 문헌[편집]

주석[편집]

  1. 김성욱 기자 (2010년 10월 15일). “한국에 온 일본 요리사의 중국요리”. 머니위크. 2010년 10월 18일에 확인함.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