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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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왕이 최초로 사용한 이래 몇 차례 사용되었다. 중국의 연호를 받아들이기 이전 고구려 및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발해는 건국 이후 줄곧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 이후에는 대부분 중국의 연호를 받아들였으나 고려 초기를 비롯하여 자주국임을 강조하던 시대 분위기에 따라 독자적인 연호가 제정되었던 시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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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개요
한국 최초의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왕이 사용한 영락(永樂)으로, 연호를 기년으로 사용한 기록이 전하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 및 일본은 연호를 사용하여 역사를 기록한 것이 다수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한국은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려 이후로 편찬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역사서는 국왕의 재위년 및 중국의 연호를 기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 말기 고종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뒤에는 해당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다수 전해진다.
한국에서 특수하게 사용된 연호로 명나라 의종의 연호인 숭정(崇禎)이 있다. 소중화사상이 발달한 조선 후기에 내부적으로 사용된 연호로 청나라에게 멸망된 명나라의 유지를 잇고 오랑캐인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숭정 연호를 수백 년 동안 계속 사용하였다.
[편집] 고구려
- 영락(永樂: 광개토왕 연간에 사용, 391~412)
- 연수(延壽: 장수왕 연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
- 연가(延嘉: 장수왕 또는 안원왕 연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
- 건흥(建興: 장수왕 또는 안원왕 또는 영양왕의 연호로 추정)
- 영강(永康: 연대 미상)[1]
[편집] 백제
[편집] 신라
- 건원(建元: 법흥왕, 진흥왕 연간에 사용, 536~550)
- 개국(開國: 진흥왕 연간에 사용, 551~567)
- 대창(大昌: 진흥왕 연간에 사용, 568~571)
- 홍제(鴻濟: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연간에 사용, 572~584)
- 건복(建福: 진평왕, 선덕여왕 연간에 사용, 584~633)
- 인평(仁平: 선덕여왕 연간에 사용, 634~647)
- 태화(太和: 진덕여왕 연간에 사용, 647~650)
- 이후 당의 연호를 사용
[편집] 장안국
[편집] 발해
- 인안(仁安: 무왕 연간에 사용, 719~736)
- 대흥(大興: 문왕 연간에 사용, 737~793)
- 보력(寶曆: 문왕 연간에 사용, 774~781?)
- 중흥(中興: 성왕 연간에 사용, 794~795)
- 정력(正曆: 강왕 연간에 사용, 795~808)
- 영덕(永德: 정왕 연간에 사용, 809~812)
- 주작(朱雀: 희왕 연간에 사용, 813~817)
- 태시(太始: 간왕 연간에 사용, 817~818)
- 건흥(建興: 선왕 연간에 사용, 818~830)
- 함화(咸和: 대이진 연간에 사용, 830~858)
- 이후 연호에 대한 기록이 없음
[편집] 정안국
[편집] 흥료국
[편집] 대원국
[편집] 태봉
[편집] 고려
[편집] 대위국
[편집] 조선
[편집] 대한제국
[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大韓民國: 독립운동 진영에서 사용, 1919~1948)
-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연호를 사용.
[편집]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연호는 연호에관한법률에 근거한다.[3]
- 대한민국(大韓民國: 1948.8.15 ~ 1948.9.24.): 1919년을 원년으로 사용.
- 단군기원(檀君紀元: 1948.9.25. ~ 1961.12.31.): 1948년을 단기 4281년으로 사용.
[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주체(主體: 1912~)
[편집] 주석
- ↑ 이상의 모든 출처는 정운용, 〈금석문에 보이는 고구려의 연호〉
- ↑ 고대사 뇌관 ‘칠지도’ 제작연도 369년 아닌 408년
- ↑ http://www.mospa.go.kr/gpms/view/korea/korea_index_vm.jsp?cat=bonbu/chief&menu=chief_06_04_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