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별신굿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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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탈놀이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중요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JPG
지정 번호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지정일 1980년 11월 17일
전승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전승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하회별신굿탈놀이(河回別神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常民)들에 의해서 연희(演戱)되어온 탈놀이이다. 정월 초이튿날에서 보름 사이에 주민들이 병을 앓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며 서낭신(神)을 위안하는 부락제를 마친 후 벌이는 가면극이다. 이 부락제는 반드시 마을 주민들이 지내게 되어 있는데, 서낭신이 대제를 원하는 경우, 10년마다 주민들이 대제를 지내지 않으면 서낭신이 벌을 내려 병자가 생길까봐 드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이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굿의 일환으로 연희되었다. 별신굿이란 '별나다', ' 특별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곧 별난 굿 또는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한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주요 공연물이다. [1]

유래[편집]

한국의 부락제(部落祭)는 그 연원(淵源)이 오래되었으며, '영고(迎鼓)' '무천(舞天)' '동맹(東盟)' 등과 '팔관회' '중동팔관회(仲冬八關會)' 등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 명칭은 여러 가지이나 이를 2대 유형으로 나눈다면, 하나는 남성 본위로 유교풍(儒敎風)의 축문을 읽는 '동제(洞祭)'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중심으로 무당이 주재하는 '도당(都堂)굿'일 것이다. 그러나 유식동제(儒式洞祭)보다 원초적인 것으로 축문도 없이 제주(祭主)가 조용히 정성을 드린다는 '산제(山祭)'가 있다. 즉 산제와 당제·동제가 부락제의 기본유형이 된다.

이러한 부락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현재 서낭가면(城隍假面)이 전해지고 있는 경북 안동시 하회동의 동제와 별신굿놀이이다. 하회동의 서낭신은 '무진생서낭(戊辰生城隍)님'이며, 이곳 서낭제의 평상제(平常祭)는 보통 동제(洞祭)라 부르고, 10년에 한 번씩 지내는 별신제(別神祭:별신굿) 또는 도신제(禱神祭)라 부르는 임시특별제가 있다(1928년 이래 중단되었다).

진행 과정[편집]

  • 첫 과장(科場)은 '주지놀음'이다. '주지란 호랑이를 잡아 먹는 무서운 귀신'이란 설도 있으나 주지는 '사지' 즉 사자(獅子)를 말한다. '주지놀음'은 서막으로서 다른 가면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벽사를 위한 의식무(儀式舞)로서의 사자춤이다. 붉은 보자기로 전신을 가리고 주지머리를 손에 든 광대 두 사람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사방으로 휘두르면서 돌아다닌다.
  • 2과장(科場)으로는 무녀가 주연하는 '삼석놀음'이 있었다고 하며, 토끼같이 귀가 난 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지금의 2과장은 서막적인 과장으로 주지와 삼석놀음이다.
  • 본격적인 놀이는 3과장 파계승(破戒僧) 놀이부터이다. 그리하여 놀이는 4과장 양반선비놀이, 5과장 떡다리와 할미의 살림살이과장, 6과장은 백정이 나와 소를 잡는 살생과장, 7과장 환자(還子)놀이, 8과장 총각과 각시의 혼례과장, 9과장 신방(新房)과장으로 이어진다.
  • 다음으로 헛천굿(거리굿)이 별신행사 최종일인 정월 보름날 마을 앞 길거리에서 거행되고 이날 밤 자정에 상당에 올라가 당제를 지낸 다음 서낭대는 당에 봉납하고, 하당과 삼신당에 차례로 제를 올림으로서 별신행사가 끝나며 산주와 광대들은 12월 그믐 이래 15일 만에 처음으로 근신합숙(謹愼合宿)에서 풀려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탈 소개[편집]

하회탈은 오리나무에 종이를 입히고 안료를 두세 겹 칠해서 만든다.[2]

  • 주지
주지탈은 모두 2개가 있는데 주지는 사지 즉 사자를 나타내는 가면으로, 첫과장에서 잡귀를 내쫓는 데에 쓰인다. 탈의 재료는 오리나무이며 짐승을 전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도안화한 형상이다. 나비의 날개모양을 한 넓은 목판(木板)이 짐승의 갈기 구실을 하고, 그 아래에 짐승의 주둥이를 만들어 붙였는데, 나무고리를 손으로 조종함으로써 입이 열리고 닫힌다. 나비모양의 뒷 목판엔 종이를 덧대어 청•홍•백•녹색 등으로 눈과 콧마루를 그렸는데 아래쪽에 뚫린 코와 입이 연결된 도안이다. 목판에 붙인 채색지(彩色紙)는 많이 손상되어 있다. 목판 가장자리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 것은 놀이할 때 꿩털을 꽂는 자리이다. 크기는 첫째 주지가 목판 높이 10㎝, 너비 40㎝, 아가리 높이 14.5㎝, 너비 9.5㎝이며, 둘째 주지는 목판 높이 11㎝, 너비 35㎝, 아가리 크기는 첫째와 거의 같다. 놀이법은 붉은 보자기로 전신을 가리고 주지머리를 손에 들고 춤을 추면서 사방으로 휘두른다.
  • 각시
셋째 과장에서 처녀역으로 얼굴에 쓰는데 탈 윗가장자리에 단 검은 탈보로 머리 전체를 가린다. 오리나무로 조각하였으며 채색과 옻칠을 하였으나 어떤 염료를 사용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머리 위에 한일자로 여섯 타래의 큰 머리를 얹었고 다시 두 귀를 덮으며, 좌우로 똑같이 머리채를 턱 아래까지 늘어뜨려 좌우대칭(symmetry)의 효과를 나타내었으며 그 머리채는 한 번씩 안으로 돌려 땋아내린 끝에 둥근 공간을 둔 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머리 모양은 부여 군수리(軍守里)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백제 때의 것, 보물 330호)의 보발(寶髮)과 비교된다. 비교적 넓은 광대뼈를 가진 전형적인 한국사람의 얼굴인데 입은 다물었고 처녀의 생경(生硬)한 표정이다.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하였고 안면 전체는 살색 위에 분을 칠했으며 양 볼엔 둥근 연지와 이마엔 곤지의 흔적이 있고, 입술은 붉은색으로 칠했다. 눈은 실눈(半眼)으로 떴고 왼쪽 눈은 오른쪽 눈보다 모양이 약간 커서 좌우부상칭(asymmetry)의 수법을 사용하였는데 움직임에 따라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정을 가져오려 하였다. 코는 납작한 편이며 두 눈은 뚫렸으나 코와 입은 뚫리지 않았다. 높이 39.5㎝, 너비 20㎝인데, 현재의 상태는 드리운 머리채의 우측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탈을 쓸 때의 의상은 처녀의 옷차림으로 보통 노랑 저고리와 다홍 치마를 입는다.
셋째 과장에서 파계승 역으로 착용한다. 오리나무로 조각하고 채색하였다. 얼굴 전체의 바탕은 대추빛이며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다. 양쪽 뺨과 눈 구석 언저리에는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두 눈은 실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벌린 입과 함께 교활한 웃음을 느끼게 한다. 미간(眉間)에는 백호(白毫)처럼 작은 혹이 있고 코는 매부리코로 우뚝하다. 턱은 따로 노끈으로 매어달아 움직일 수 있다. 하회탈 중에서 중과 양반•선비•이매•백정 등이 모두 턱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이다. 눈은 뚫려 있고 코밑과 턱에는 수염을 꽂았던 흔적이 있다. 높이 20㎝, 너비 16㎝이며, 현재의 상태는 왼쪽 눈 아래 눈시울 중앙이 결손되어 있다. 놀이할 때는 지팡이를 짚고 가사와 장삼을 입는다.
  • 양반
넷째 과장 양반과 선비놀이에서 양반역에 착용된다. 재료는 오리나무이며 채색은 많이 벗겨졌다. 하회탈의 채색기법은 칠기(漆器)와 마찬가지로 나무에 종이를 입히고 옻과 안료로 두겹 세겹 칠하여 색조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얼굴 바탕색은 주황색에 가깝다.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게 칠했으며 양 볼 위와 눈 구석 언저리에는 가느다란 주름살이 잡혀 실눈과 함께 웃는 표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속없이 허풍떠는 위인의 인상이 역력하다. 눈과 코는 뚫렸고 턱은 따로 달아 움직인다. 코밑과 아랫입술 밑에 수염을 박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또 턱 오른쪽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것은 끈을 꿰어 그 한 끝을 치아와 혀로 조종하여 턱을 움직이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 한다. 코는 중•선비와 마찬가지로 매부리코에 가깝고 코끝의 좌우 양족 끝부분이 벌어진 큰 코이며 강한 인상을 풍긴다. 높이 23㎝, 너비 17㎝이며, 현재의 상태는 따로 단 턱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을 다시 접착시켰다. 놀이할 때는 도포에 정자관(程子冠)을 쓴다.
  • 선비
넷째 과장에서 선비역이 착용한다. 얼굴 빛깔은 중이나 초랭이탈과 마찬가지로 대추빛 바탕에 갈색으로 덮였다.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게 칠했고 이마와 양 볼과 눈 가장자리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으며 눈은 둥글게 뚫려 있어 웃는 얼굴이 아니라 다소 거만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다. 코밑과 아랫입술 밑에 수염 꽂았던 구멍이 있고 턱은 따로 달아서 움직이는 구조이며 턱 왼쪽 아래에 조종하는 작은 구멍이 남아 있다. 코는 약간 매부리코이며 뚫려 있다. 높이 19㎝, 너비 16㎝. 현재의 상태는 오른쪽 눈이 아래로부터 윗입술까지 깨져 있다. 놀이할 때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쓰며 담뱃대를 든다.
  • 초랭이
양반의 하인역으로 경망하게 까부는 성격이다. 얼굴빛은 중과 선비와 마찬가지로 주홍색 바탕에 갈색을 얹혔다. 눈썹은 검게 칠했으며 둥글고 조그만 눈이 톡 튀어나오게 새겼고 눈시울에는 흰 테를 둘러 볼록 솟아나온 것처럼 보이며 구멍이 뚫려 있다. 입도 뚫려 있는데 약간 벌린 입에는 아래윗니가 보인다. 턱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대신 입이 반쯤 열려, 작고 둥근 눈과 함께 표정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또 양쪽 볼에 약간의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코 밑과 아랫입술 밑에는 식모공(植毛孔)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빨간 수염을 달아 코믹한 효과를 돋워 준다. 이 탈의 조각 기법의 특징은 사실적 수법을 사용한 양반탈과는 달리 도안화(圖案化)와 상징적 도법(刀法)으로 감도법(減刀法)을 쓴 점이라 할 수 있다. 또 의장(意匠)에 있어 좌우부상칭(左右不相稱)한 수법을 사용하여 코믹한 효과와 표정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높이 20㎝, 너비 14㎝이며, 현 상태는 아래턱 가운데에 금이 가 있다. 놀이할 때는 바지 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두른다.
  • 이매
선비의 하인역으로 바보탈이라고도 한다. 얼굴 빛깔은 주황색으로 양반•백정과 같은 계통의 채색이다. 눈은 실눈으로 눈 구석이 아래로 길게 처졌고 이마와 볼의 주름살과 함께 좌우부상칭의 조선(彫線)은 바보처럼 웃는 표정을 나타낸다. 코와 턱은 떨어져나가 전하지 않으며 이매탈의 턱은 본래부터 없었다는 전설이 하회지방에 전해오는데 이로 미루어 그 없어진 시기는 꽤 오래된 것 같다. 윗입술에 남아 있는 구멍으로 보아 이매탈의 턱도 따로 달아서 움직였던 것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높이 15㎝, 너비 16.5㎝이다. 현 상태는 머리로부터 코 왼쪽으로 턱까지 금이 가 있고 코와 턱은 떨어져나가 전하지 않는다. 또 오른쪽 눈 아래시울도 결손되었으며 칠한 것도 많이 벗겨졌다. 놀이할 때의 복장은 평민의 남자 복색에 벙거지를 쓴다.
  • 부네
양반과 선비의 소첩(小妾)역을 맡는 젊은 여인(coquette)가면이다. 얼굴 바탕색은 살색인데 분칠을 하였으며 이마와 양 볼엔 연지, 이마엔 곤지, 그리고 입술에도 붉은 칠을 하였다.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하였고 머리는 얼굴 상반부를 테두리같이 둘러 귀를 덮었는데, 양 볼 끝까지 드리웠고, 양쪽 머리 위에 뿔 모양으로 쪽을 지었다. 각시와 부네의 헤어스타일이 탈을 제작한 당시의 처녀와 기혼녀의 차이를 보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쨌든 실눈과 반쯤 벌린 입은 남성들을 매료하기에 족하다 하겠다. 조각은 얼굴 전체가 납작하고 머리모양과 눈썹•눈•양 볼 등 얼굴 전체가 좌우상칭으로 예쁘장한 면을 다루었는데 우뚝 솟은 날씬한 코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요염하고 자신있는 표정을 보인다. 눈과 입은 뚫려 있다. 높이 24㎝, 너비 17㎝이다. 현 상태는 머리 복판에서 코 왼쪽으로 턱까지 완전히 두쪽이 나 있는 것을 붙여놓았다. 놀이할 때의 복장은 젊은 부인의 복색으로 옥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 등이다.
  • 백정
소를 잡는 백정역이 쓴다. 전에는 이 탈을 '희광이(死刑執行人)'라 불렀으며, 놀이도 소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형하는 형용을 하였다고 한다. 얼굴 바탕은 약간 검붉은 기가 있는 주황색인데,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때가 끼어 이런 색조로 변한 것 같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 칠을 했고 두 눈썹 사이에는 작은 혹이 났는데 중의 그것보다 약간 작다. 이마와 미간과 양 볼에는 몹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주름살을 새겨 험상궂은 인상을 주며, 눈은 실눈으로 뚫렸고 약간 미소를 지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험상궂은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코끝의 좌우 양쪽 끝부분이 넓고 코가 크며 턱은 따로 달려 움직이는데 양반이나 선비에 비해 억세어 보인다. 턱 왼쪽에는 턱을 움직이는 실을 꿰는 구멍이 남아 있으며, 조종실을 입으로 당겼다 늦추었다 하여 턱을 움직이면 험상궂은 효과가 가중된다. 높이 24㎝, 너비 16㎝이며 현재의 상태는 오른쪽 머리에서부터 윗입술까지 두 쪽으로 깨졌고 오른쪽 눈도 많이 결손되었으며 왼쪽 눈은 눈시울이 약간 결손되었다. 놀이할 때는 천인(賤人)의 복색을 하고 3색 띠를 두르고 도끼와 칼을 지닌다.
  • 할미
노파역이 착용한다. 얼굴 바탕은 검붉은 빛깔인데 얼굴 전면에 녹색 반점을 찍어 기미를 나타내려 하였다. 하회탈은 모두 2도 내지 3도씩 채색을 하였고 검은 부분도 먼저 녹색을 칠하고 그 위에 검은 칠을 하였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 칠을 하였고 눈은 둥글게 뚫렸으며 미간이 깊이 패고 작은 코가 오뚝 솟았다. 양 볼과 눈 언저리•입가에는 주름살이 새겨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 턱은 끝이 뾰족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탈을 쓴 사람의 붉은 입술과 흰 치아가 그대로 드러나 특이한 액센트를 주며, 뚫린 눈과 어울려 싱싱하게 표정이 산다. 높이 20㎝, 너비 14㎝. 현재의 상태는 턱 오른쪽 아래가 깨졌다. 놀이할 때 입는 복색은 평민계급의 노파 복색으로 흰 저고리와 회색 치마를 입고 쪽박을 들고 나온다.

종교적 의미[편집]

농사를 근간으로 하는 전통 사회에 있어서 풍농(農-농사가 잘됨)은 마을 공동체를 지탱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다. 풍년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에 의해 결정이 되며 이것은 곧 신의 뜻에 달렸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마을의 안녕을 가져다주는 것은 곧 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에 의하여 결정된다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마을마다 동신(洞神)을 모시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정성을 다해서 신에게 제사를 받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을 수호신(守護神)에게 매년 올리는 제사를 동제(洞祭), 당제(堂祭)라 부른다. 제사를 올리는 시기는 대부분 정월(음력1월) 대보름이다.

이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正月)은 가장 신성하며 이 날 뜨는 달이 가장 깨끗하고 신비스러워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중 전승되는 세시 풍속이 바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별신굿은 매년 지내는 동제와 달리 일정한 주기(10년 혹은 5년 또는 신탁이 있을 때)를 갖고 정기적으로 열렸다. 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힘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영험이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되면 마을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신굿은 무당을 불러서 무당(巫堂)에 의해 굿을 하거나 또는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큰굿을 하게 되는데 하회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풍자와 해학[편집]

민속놀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계층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중의 파계를 통하여 당신 불교의 타락상과 종교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상민들의 삶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별신굿 탈놀이를 통하여 상민들은 세상살이를 풍자(諷刺)하고,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 없이 마음껏 발산 할 수 있었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상으로 볼 때 지배계층의 비판으로 일관된 탈놀이가 하회라는 양반마을에서 양반들의 묵인하에 또는 경제적인 지원 속에서 연희된 것이다.

상민들은 탈놀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양반들은 상민들의 비판과 풍자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별신굿이라는 마을공동체 신앙에 포함되어 연희되던 탈놀이의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 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의 문제점들이 완충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것이 새롭게 공동체의 기존체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공연 안내[편집]

하회마을에서는 하계(3~11월) 매주 주말(토요일, 일요일) 탈춤 특설공연장에서 1일 2회씩 공연한다.

주석[편집]

  1. 문화재검색 | 문화재청
  2. 탈춤 (1992년 3월 31일). 《채희완》. 대원사, 26쪽. ISBN 89-369-0120-6

참조 자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