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인리히 본 클라이스트

베른트 하인리히 빌헬름 폰 클라이스트(Bernd Heinrich Wilhelm von Kleist ; 1777년~ 1811년)는 독일의 극작가이다.

[편집] 생애

그의 가족은 프러시아의 귀족으로 대대로 군인 집안이었으며, 그도 군무에 종사하였으나, 1799년에 군적을 떠나 고향에 있는 대학에 다녔다. 칸트를 연구하여 진리인식의 불가능을 칸트 철학에서 깨닫고 절망한 나머지 방랑생활의 여정에 올라 독일 국내,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전전하였다. 예술과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고투를 거듭하였으나, 결국은 뜻에 맞는 것을 얻지 못하여 베를린 근교에서 자살하였다. 그의 처녀작 《슈로펜슈타인가》(1803년)에서 클라이스트 적인 문학의 특질이 발로되어 있다. 《로베르트 기스카르트》의 경우 현존하는 것은 앞부분 10장에 불과하나, 그 박력과 밀도는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다. 《깨어진 항아리》는 독일 희극 가운데 최고봉의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고, 《암피트리온》(1807년)은 몰리에르의 희극을 바꾸어 꾸민 것이다. 《펜테질레아》(1808년)에서 주인공의 주아적 애증의 착란과 광포의 묘사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한 바가 있었다. 《하일브론의 케트헨》(1810년)은 이와는 대조적인 낭만적 희곡으로서 헌신적인 사랑과 절대적 복종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나폴레옹에 대한 적의와 증오 때문에 《헤르만의 전쟁》(1808년), 《홈부르크 공자》가 쓰여졌다. 후자는 이 시인의 최고 걸작이다. 그리고 독특한 재능을 보인 단편 소설 《미하엘콜하스》(1810년) 등이 있다. 클라이스트의 고집 세고 철저한 성격은 현실과 사사건건 격돌하면서 그의 인간적 비극이 생기기도 하였다.

20세기 초두에 클라이스트에 대한 인식이 겨우 높아지면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천재적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본 문서에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GFDL 또는 이에 준하는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