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르스키 지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프리모르스키 지방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기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문장

프리모르스키 지방(Примо́рский край)은 러시아의 지방이다. 러시아 극동에 있다. 연해주(沿海州)라고도 불린다. 주도는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면적은 165,900 km², 인구는 207만 1210명 (2005년)이다. 중심지는 블라디보스토크, 지방 지사는 세르게이 다리킨이다.

지리[편집]

프리모르스키 지방은 중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함경북도, 라선특급시), 동해에 접해 있다.

역사[편집]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연해주에 최초로 살았던 사람들은 고아시아인들과 퉁구스 인들이었다. 5~6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나나이, 우데게이, 에벤키 같이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아직도 연해주와 아무르 주에 거주하고 있다.

698년부터 926년까지는 발해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발해는 연해주 외에도 만주한반도 북부를 통치했으며, 만주와 이 지역의 일부를 통치하였던 고구려의 후예와 퉁구스 계통의 말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해는 동아시아의 중세봉건국가로, 농업, 목축 등의 산업과 함께 고유의 전통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발해는 , 일본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1115년부터 1234년까지 극동 러시아의 남쪽 부분은 보다 강력한 제국인 여진족금나라가 지배하였다. 여진족은 퉁구스계의 민족이다. 유목농업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금나라는 또한 야금, 조선 등의 산업이 있었다. 금나라는 발해와 마찬가지로 , 고려,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북중국을 점령하는 등 금은 매우 강한 국력을 과시하였다.

금나라는 칭기즈 칸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만다. 몽골 군대는 여진족의 모든 도시와 항구와 선단을 파괴해 버린다. 또한 금나라 인구의 대부분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몽골의 통치를 피해 아무르 강, 오호츠크 해 해안, 사할린 등의 외딴 곳으로 숨었다. 시간과 함께 이들은 발해와 금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잊어버리고 채집, 어로, 수렵 생활로 되돌아갔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독특한 동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

원나라 멸망 이후 이 지역은 명나라청나라의 땅이 되었다.

17세기 중엽 러시아가 헤이룽 강(黑龍江, 아무르 강)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1689년에 러시아청나라가 체결한 네르친스크 조약스타노보이 산맥을 양국의 국경선으로 정하였고, 연해주는 청나라에 속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청나라가 약해지면서 러시아는 남하(南下)를 시도하였고, 1858년에는 하바로프스크가 설립되었다.

니콜라이 무라피요프-아무르스키 백작에게 있어서 러시아가 해안지방을 획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러시아는 1858년 체결된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 강(헤이룽 강, 黑龍江)의 이북 지역을, 1860년에 체결된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 강 동쪽인 연해주를 차지하였다.

1859년부터 1882년 사이에 95개의 정착지가 건설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당시 인구의 3분의 2 이상은 농업, 수렵, 생선 교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엽에 석탄 채굴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케일, 녹용, 목재, 게, 건어물, 해삼 등도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랄산맥 아래의 첼랴빈스크까지 개통되었다.

러시아 내전이 끝난 1922년부터 이 지역의 발전은 러시아를 새로 차지하게 된 볼셰비키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어업과 광업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고 철도와 해운업 역시 발달했다.

주민[편집]

대부분이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한국인(주로 고려인, 일부는 대한민국, 북한출신), 일본인, 중국인(조선족), 우데게이족, 오로치족, 나나이족, 폴란드인, 타타르족, 독일인, 유대인, 아제르바이잔인, 아르메니아인 등 여러 소수민족들이 거주한다.

도시[편집]

[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