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슈토이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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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이벤 남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페르디난트 폰 슈토이벤(독일어: Friedrich Wilhelm August Heinrich Ferdinand von Steuben, 1730년 9월 17일 ~ 1794년 11월 28일)은 미국 독립 전쟁에서 싸운 프로이센군인이다. 흔히 "슈토이벤 남작"으로 알려져 있다.[1] 미국 독립 전쟁에서 조지 워싱턴 장군을 보좌했다. 그는 1812년 전쟁 때까지 미합중국군의 표준 교본이 된 《혁명전쟁 훈련 매뉴얼》을 썼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져 체계가 떨어지던 대륙군의 훈련과 전술, 통제의 기본을 가르쳤다.

성장기[편집]

슈토이벤은 1730년에 프로이센 왕국마그데부르크에서 기사 중위 빌헬름 아우구스팅 슈토이벤(1699년 - 1783년)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시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루돌프 게르하르트 아우구스틴(Friedrich Wilhelm Ludolf Gerhard Augustin)이었다. 슈토이벤은 프로이센 국왕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슈토이벤의 아버지에게 러시아 제국에 가서 러시아 여제 안나 1세를 모시라고 명령했을 때, 아버지 빌헬름 따라 러시아에 동행했다. 1740년, 프리드리히 2세가 프로이센 왕을 계승한 후 슈토이벤의 가족은 프로이센에 돌아왔다. 슈토이벤은 브레슬라우의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고 17세 때 프로이센 육군 장교로 들어갔다.

7년 전쟁(1756~1763)에서 프로이센 군의 대위로서 복무하였고, 보병 부대의 참모 장교로 7년 전쟁에 종군한 후 참모 본부의 일원으로서 잠시 러시아에서 근무를 했다. 슈토이벤의 근무 태도는 칭찬할만한 것이었으므로, 결국 프리드리히 2세의 참모 조직을 할당받았다. 프로이센 육군 참모 본부 생활은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이러한 슈토이벤 훈련은 군대에 필요한 기술적 지식을 대륙군에게 가져 오게 되었다.

미국[편집]

1777년 미국으로 건너와 독립군들이 영국군들을 꺾는 데 도움을 제공하였다. 조지 워싱턴 장군은 슈토이벤을 소장으로 만들어 군대의 훈련을 지도하는 부탁을 하였다. 슈토이벤은 빠르게 규율없는 군대를 우수한 육군으로 변화시킨다. 그는 직접적으로 행렬의 기초적 원칙에서 머스켓총과 총검으로 싸우는 군인들에게 엄격한 훈련을 시켰다. 또한 요크타운먼머스에서 영국군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데, 독립군들을 지휘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 머물러 뉴욕 주에서 편하게 퇴직 생활을 즐겼으며 1794년 11월 28일 유티카에서 사망하였다.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