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리알 22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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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력의 프레리알을 의인화한 그림

프레리알 22일 법(Law of 22 Prairial, 프랑스어: Loi du 22 prairial an II)은 프랑스 혁명기의 법률이다. 프랑스 혁명력 2년(서기 1794년)의 프레리알 22일(6월 10일)에 제정된 법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이 법은 공포 정치를 강화하는데 악용되었기 때문에 《공포정치법》(프랑스어: loi de la Grande Terreur)라고도 불린다.

내용[편집]

이 법률에는 “모든 시민에게 반혁명 분자를 파악하고 치안 판사 앞에 그들을 데려 오기 위해 권한을 준다. 반혁명적인 행위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요구된다 "라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공안위원회기소, 고발 등 사법 절차를 크게 간소화했다. 즉, 반혁명적인 행위가 발각되면 증거 없이도 배심원 심증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포정치[편집]

법률에 의해 혁명재판소의 권한을 확대하고, 피고인의 자기방어를 제한했다. 그리고 혁명의 정의에 저촉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반대로 혁명의 이름으로 공포 정치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예를 들어, 파리혁명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람은 법원 설립 1793년 4월 6일부터 1794년 6월 10일까지 약 1년 2개월간 1,251명인 반면 1794년 6월 10일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게 되는 1794년 7월 27일까지 1개월 반 동안 1,376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법률 하에서 모든 처벌은 사형이었다. 따라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실제로 결백한 사람이 무고를 당해 단두대로 보내진 경우도 많았다.

반혁명 분자 숙청을 요구한 조르주 쿠통이 제안을 했고,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지지를 받아 통과되었다. 내란의 진압과 공포 정치의 강화를 주장한 좌파와 극좌파는 환영했지만, 국민 공회 의원 중도파의 대부분은 이 법의 제정에 내심 반대하였다. 자신이 숙청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의 제정된 지 약 2개월 후 일부 의원이 로베스피에르파의 타도를 위해 움직이면서, 중도파가 협조하여 테르미도르의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로베스피에르는 실각하게 된다. 새로 권력을 손에 넣은 테르미도르 파가 반동 정치를 실시하여 공포 정치는 종말을 맞이한다.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