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바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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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865–1866. 프레데리크 바지유.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미술관.

장 프레데리크 바지유(Jean Frédéric Bazille,1841년 12월 6일1870년 11월 28일)는 인물 묘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인상주의 화가이다.

랑그도크루시용에로 데파르트망에 있는 몽펠리에에서 중산층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바지유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을 본 뒤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된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의학을 공부할 것을 전제로 그림을 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바지유는 1859년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1862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파리로 이사한다. 여기서 그는 인상주의 화가가 되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만났고, 샤를 글레르의 수업을 듣게 된다. 1864년 의학 시험에 불합격한 뒤 바지유는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보낸다. 그의 친한 친구들 중에는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지유는 그의 작업실 내부의 공간이나 그림에 필요한 재료 등을 제공해 주면서 이 예술가들을 지원해준다.

바지유는 〈분홍 드레스〉를 포함하여 여러 유명한 그림들을 그렸을때 불과 23세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재결합한 가족〉(1867년–1868년)이다.

프레데리크 바지유는 1870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도중 루아레본라롤랑드에서 전사했다.

주요 작품[편집]

갤러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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