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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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François de La Rochefoucauld.jpg
출생 1613년 9월 15일
프랑스, 파리
사망 1680년 3월 17일 (66세)
국적 프랑스
장르 수필가
주요 작품 Memoirs
Maximes
배우자 Andrée de Vivonne
자녀 Prince de Marcillac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년 9월 15일 ~ 1680년 3월 17일)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 작가이자 모랄리스트이다. 대귀족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16세에 이탈리아 전쟁에 참가한 후부터 사랑과 야심에 찬 모험의 시대를 보낸다. 루이 13세의 궁정에 들어갔으나 왕비 안 도트리슈의 심복인 미모의 슈브뢰즈 공작 부인과 정을 통하고, 왕비의 반(反) 리슐리외 음모에 가담, 발각되어서 1637년 8일간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었다. 그 후 왕비의 냉대와 롱게빌 공작 부인의 선동도 있어 프롱드의 난에 가담, 1652년 상 앙투안의 결전에서 실명(失明)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다. 이때 롱게빌 부인은 이미 그에게서 떠난 뒤였다. 그는 그때부터 일체의 정치적 야심을 포기하고, 고향 베르트유로 돌아가 <회상록>을 집필했다. 이와 같은 음모·배신, 그리고 절망이 그의 인간을 완성시켜 '막심(箴言)'의 하나하나를 생기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1658년 다시 파리의 사교계에 돌아와서 오네트 옴(良識人)으로서 사블레 부인 등의 살롱에서 사색을 계속했다. 또한 이 무렵 <클레브 공작 부인>의 저자 라파예트 부인과 교제를 시작하여 만년까지 계속되었다. 1665년 익명으로 <막심>을 간행하여, 특유한 예리하 통찰력과 농후한 페시미즘에 의해서 인간 심리의 심층에 담긴 '자기애(自己愛)'를 예리하게 그려내어 이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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