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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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풍납리토성(廣州風納里土城)
대한민국사적
지정 번호 사적 11호
소재지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72-1외
제작 시기 삼국시대
1963년 1월 21일 지정
서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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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토성 유적이다. 풍납토성은 지난 1997년 아파트 공사 도중에 발견된 후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유적이 한성 백제 시대(온조왕 ~ 개로왕)의 이른바 하남위례성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편집] 성의 규모

선문대학교 고고학과 이형구 교수가 측량한 결과, 풍납토성은 둘레가 약 3.5km, 밑변이 30~40m, 높이가 15m, 넓이 약 26만평으로, 현존하는 토성 중 대한민국에서 최대 규모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성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축정된 것이라고 2000년 4월에 발표했다. 성의 규모와 축성 시기를 보았을때 당시 이 성을 축조한 백제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국가 체제를 수립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이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중국 은나라의 수도 유적이다. 9.9m이상의 성벽을 가진 9km의 유적은 1만 여명이 일년에 330일씩 18년 이상을 작업해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에 비추어보았을때 풍납토성도 그만한 인력을 동원하여 장기간 시간을 들여 축조할 수 있는 국가가 존재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한강변에 남아있는 초기 백제시기의 토축 성곽으로, 주로 풍납토성이라 부른다. 원래는 둘레가 4㎞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1925년 홍수로 남서쪽 일부가 잘려나가 현재는 약 2.7㎞ 가량 남아있다.

토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이다. 성벽은 돌이 없는 평야지대에서 성을 쌓는 방식으로 고운 모래를 한층씩 다져 쌓았다. 성벽의 표면은 잔디와 잡초로 덮여 있는 곳이 많으며, 높이는 일정하지 않다. 동쪽에는 4곳에 출입문으로 여겨지는 흔적이 남아있다.

풍납리식 민무늬토기·신라식 토기들과 그물추·물레·가락바퀴(방추차)·기와 등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백제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게 되었다.

성의 성격에 대해서는 도성인 위례성으로 보는 견해와 방어성으로 보는 두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더욱 연구·조사 되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 백제의 중요한 성으로서 당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며, 주변에 몽촌토성과 석촌동 고분군과 관련되어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치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