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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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전문제조선명나라에 보낸 표전이 문제를 일으켜 두 나라 사이에 불화를 가져온 일이다. 명나라는 표전을 지은 정도전을 명나라로 보내라고 요구했고, 정도전은 이에 대항해 요동정벌을 계획하였다.

사건의 발단[편집]

표전은 왕가의 서한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초 명나라에 보낸 표전이 세 번이나 문제를 일으켜 두 나라 사이에 불화를 가져온 일. 명나라는 1396년(태조 5) 2월의 정조표전(正朝表箋), 3월의 국왕의 주청문(奏請文), 97년 12월의 계문(啓文)에 불손한 표현이 있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계속 표전 지은 사람을 잡아보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첫 번째 표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었는데 명나라에서 그의 소환을 계속 요구하자, 정도전은 이에 대항해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태조의 호응을 받아 병력증강에 힘썼으나, 98년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제거되면서 이 문제는 매듭지어졌다.

권근의 봉행[편집]

권근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명나라를 방문했으며, 명에 억류되어 있던 오진, 송희정, 권을송, 조서, 곽해룡 등이 10년 만에 귀환할 수 있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原文의 ‘芳遠表謝 因請冕服·書籍 帝嘉其能慕中國禮 … 表裏’의 記事는『太宗實錄』太宗 3年 7月 壬午條에서 同年 10月 辛未條 사이의 明과 朝鮮과의 關係가 한 記事로 綜合되어 있다(註 225)·228)·229) 參考). 여하간 이로써 從來의 兩國關係의 不協和가 解決되어 表箋問題로 이때까지도 明에 抑留되어 있던 吳眞·宋希靖·權乙松·曺庶·郭海龍 등이 거의 10年만인 太宗 4年 3月에 歸還하게 되었다', 양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