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디 로이 베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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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디 로이 베이츠
Paddy Roy Bates
출생 1922년 8월 29일(1922-08-29)
잉글랜드 잉글랜드 런던 일링
사망 2012년 10월 9일 (90세)
잉글랜드 잉글랜드 에식스 주 리온시
국적 Flag of Sealand.svg 시랜드 공국 (공식적), 영국 영국
별칭 시랜드 공국의 공작 로이 1세
직업 군인, 방송인
소속 시랜드 공국
병역 영국 육군 소령

패디 로이 베이츠(영어: Paddy Roy Bates, 1922년 8월 29일[1] ~ 2012년 10월 9일)는 영국의 옛 해적방송 운영자이자 육군 군인이며 시랜드 공국의 설립자이다. 1967년 9월 22일부터 사망할 때까지 시랜드 공국의 로이 공작(HRH Prince Roy of Sealand)임을 자칭하였다.

시랜드 공국의 공작[편집]

베이츠는 영국 육군으로 처음 복무하였으며 나중에 육군 소령 계급으로 진급하였다. 과거에는 어부로 일했고 나중에는 해적방송을 운영하였다.

1965년 몬셀 해상 요새(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방위 요새로 사용되었음)를 점거하고 있던 라디오 시티의 직원인 존 타워(John Tower)를 추방시켰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라디오 에식스 방송을 운영하였으며 이 방송국은 1966년 10월에 영국의 좋은 음악 방송(Britain's Better Music Station, BBMS)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지만 1966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자기 방송을 중단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방송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나중에 러프 요새로 이주하게 된다. 러프 요새는 몬셀 요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당시에는 영국의 영해에서 벗어나 있던 요새이기도 하였다.[2] 또한 이 곳은 초기에 잭 무어와 그의 딸, 그리고 해적방송인 라디오 캐럴라인(Radio Caroline)을 운영하고 있던 로넌 오레힐리가 점거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이츠는 자신의 보트를 타고 러프 요새로 출동하여 오레힐리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총을 쏘며 공격하였다.

라디오 캐럴라인은 이 사건 이후로 새로운 장소에서 방송을 재개하지 않았지만 베이츠는 그 곳에서 머무르기로 결정하게 된다. 1967년 9월 2일 러프 요새에서 시랜드 공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은퇴한 이후에는 자신의 아내인 조앤과 함께 살았으며 2012년 10월 9일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하였다. 슬하에 페넬로페와 마이클이라는 2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이 중 마이클은 시랜드 공국의 공작을 자칭하고 있다.

주석[편집]

  1. Sealand News - News & Information from the Principality of Sealand
  2. 당시에는 영해의 경계가 해안선을 기준으로 3해리가 되는 지점까지 인정되었으므로 이때 당시의 시랜드 섬은 영국의 영토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영해의 경계가 해안선에서 12해리까지 되는 지점으로 변경되었으므로 이 기준을 따르면 시랜드 섬은 영국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