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좌표: 37°57′21.59″N 126°40′21.33″E / 37.9559972°N 126.6725917°E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 군인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이다. 일부에서는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목차 |
[편집] 사건의 발생
사건에서 문제가 된 미루나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오래전부터 자라온 나무로서 남한과 북조선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는 데에 지장을 주고 있었었다.
UN군측인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약 12m에 이르는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여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장교 2명과 부사관과 병[1]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1]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대한민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다.
이 때 조선인민군 박철 대좌 및 장교 1명과 15명의부사관과 병[1]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루나무의 위치가 잠정적 관할선에 따라 유엔 측에 속했기에 경비중대장 직권으로 보수작업을 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한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Arthur Bonifas) 미군 대위가 작업을 계속 지시하자, 경비 병력을 요청받은 인근 초소의 인민군 부사관과 병[1] 수 십 명이 트럭으로 도착하였다. 박철 대좌가 다시 작업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나, 보니파스 대위가 이를 무시하고 다시 등을 돌렸다. 이때 박철이 공격을 명령하여, 인민군 부사관과 병[1]들은 가지고 온 몽둥이와 UN군측 노무자들이 나무 밑에 두었던 도끼 등을 빼앗아 휘두르며 기습 공격하였다. 이들은 UN군측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집중 공격을 가해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미군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Mark Barrett) 미군 중위가 이마에 중상을 입고 피살되었으며, 이밖에 미군 부사관과 병[1]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와 부사관과 병[1] 4명 등이 중경상을 입었고, UN군측 트럭 3대가 파손되었다.[2]
[편집] 대한민국과 미국의 대응
사건이 발생하자 미 백악관에서는 워싱턴 특별 대책반이 소집되고 스틸웰 주한미군 사령관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고 공동경비구역 내에 조선인민군이 설치한 불법 바리케이트를 제거하기 위한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 미국 전설에 등장하는 거구의 나무꾼 폴 버니언에서 따온 작전명)을 기본으로 F-4, F-111, B-52 폭격기, 미드웨이 호 등을 동원하는 대규모 무력 시위 계획이 수립되었고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 3이 발령되었다.[3]
폴 버니언 작전 시 UN군은 데프콘 2(공격준비태세)를 발령하였다. 미국 본토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전투기 20대가 한반도로 긴급 파견되었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카데나 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4 2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였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해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순양함 등의 중무장한 호위함 5척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역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은 교전 상황에 대비한 구체적인 전쟁 계획인 일명 '우발계획'까지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폴 버니언 작전 시 교전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한민국군 포병과 미군 포병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인 개성의 인민군 막사를 포격하고 개성 위쪽의 시변까지 포격하여 인민군 포병부대를 궤멸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 확대될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에 대한 탈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인민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핵의 사용도 고려되었다.
대한민국측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특전사 1여단 김종헌 소령을 지휘관으로 하고 64인의 특전사 대원들로 구성된 결사대가 편성되어 보복작전이 수행됐다. M16 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을 트럭에 숨기고 카투사로 위장한 64명의 특전사 요원들은 공동경비구역 내에서의 폴 버니언 작전에 투입되어 조선인민군 초소 4개를 파괴하였다. 인민군이 이에 무력대응할 경우엔 과감히 사살하여 보복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세에 겁을 먹은 인민군이 이에 대응하지 않고 물러서서 더 이상의 무력사태로까지 확대되진 않았다. [4]
[편집] 경과
폴 버니언 작전 종결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긴급 수석대표회의를 요청, 김일성 북조선 주석의 '유감성명'을 전달했다. 처음에 미국은 북조선의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24시간 만에 태도를 바꿔 이를 수락하였다. 북조선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고, 남한도 북조선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남한과 북조선의 군사력 증강대결이 벌어졌다. 또한 판문점 내의 공동경비구역에서도 경계가 설정되었으며, 경계 밖 상대편 지역에 존재하던 초소는 철거되었으며, 콘크리트 단으로 경계를 표시하였다.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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