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젤 란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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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무함마드 파젤 란카라니(1931년 -2007년 6월 16일)는 아야톨라 파젤 란카라니의 아들로서 대 아야톨라였다. 아제리 출신이다.[1]

그는 이슬람 율법에 관련해서는 가장 대표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며 시아파에서 인정받는 학자였다. 그는 여러 율법을 가르치면서 2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순나와 꾸란에 대한 판단과 출처에 대해 공부하며 이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권을 25세 때 인정받았다.

그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이란 입헌 혁명 이전에도 여러 번 투옥됐다.[2]

입헌혁명 후 그는 종교 학자들의 집합체인 "Assembly of Experts"의 초대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율법 해석은 다국어로 번역돼 아랍어를 비롯해 영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우르두어와 여러 언어로 볼 수 있다.

그는 사탄의 메시지가 담긴 것에 대해서는 모든 이를 막론하고 처단할 것을 주장했으며 1998년 이란 정부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 신도 보호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해 탈리반 세력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3]

2006년 11월 그는 이슬람교 비판의 죄목으로 고발 당해 죽은 라피크 타기라는 작가의 파트와(재판 판결 해석문)을 발행했다.[4] 그의 작품은 최근 테헤란의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쓴 것으로 이란과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이는 권력기관에 분명 저촉되는 사안이다.

그는 또한 여성이 남자 축구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없다고 믿었다.[5]

그는 그의 고향인 콤을 떠나 치료를 위해 테헤란으로 떠났으나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해 질병 악화로 2007년 7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