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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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만도(Commando)는 사병이나 군대에서 특정한 대상을 재빠르게 습격하기 위해 편성되는 특수부대이다. 이들은 빠른 기동성을 지니며 경무장 하여 기습 침투를 주임무로 한다. 낙하, 등반 등의 기술을 능숙하고, 때로는 대테러리즘, 정찰, 파괴 공작 등의 특화된 높은 위험성을 가진 임무를 수행한다.

나라별 운용[편집]

독일[편집]

연방 공화국[편집]

현재 독일 육군Kommando Spezialkräfte(KSK)와 Fernspähkompanie에서 운용한다.

Division Spezielle Operationen 예하 부대인 KSK는 카를흐(Calw), 독일 남부의 검은숲 지역에 있으며, 1,100명 가량의 군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기밀 정보에 해당하므로 자세한 구성원 숫자는 알 수 없다. 이 전투 부대는 100여 명의 지원 임무를 맡은 베테랑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4개 코만도 중대로 나뉘어 있으며, 4개 코만도 중대에는 5개 특화된 소대가 있다:

  1. "지상 잠입" 소대
  2. "공수 작전" 소대
  3. "상륙 작전" 소대
  4. "특수 지리와 기상 작전" 소대 (예를 든다면 산맥이나 극지방)
  5. "정찰, 저격, 저격 대응 작전" 소대
  • 지휘 본부 소대

이들 소대에는 4개 코만도 분대가 있으며, 각 분대를 구성하는 이들은 비교적 숙련된 장병이다. 각 단체는 저마다 무기 전문가, 의료, 전투 공병 또는 통신 전문가로서 특별 훈련되었다. 이 단체에 다른 전문가들이 추가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중화기 전문가나 언어 전문가이다.

다른 특수 부대로는 독일 해군의 Kampfschwimmer이 있다.

영국[편집]

야간에 촬영된 코만도 기념관 동상

1940년, 영국 육군은 "독립 중대"를 편성하고 후에 대대 규모로 "코만도(Commandos)"를 재편성함으로써 단어를 회생시켰다. 영국이 의도한 코만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여 기습하는 소규모 정찰 부대였다. 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휴대하고 36시간 이상 야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는데, 모든 코만도는 영국에 거주하는 병사 중에서 선발된 지원자로 이루어졌다.

전쟁동안 영국 육군 코만도처럼 잘 알려진 영국 부대로는 SAS, SBS낙하산 연대가 있었다. 영국 육군 코만도는 결코 연대화되지 않고 종전과 함께 해체되었다.

영국 특수 작전 집행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SOE)도 점령된 유럽에서 기습작전을 하려고 영국과 파견된 유럽인들(예를 들어 Cichociemni)로 코만도를 창설하였다. 그들도 특수 작전을 위해 SAS처럼 10명 그 이하 소규모로 꾸며졌다. 하나의 예로서 1941년에 노르웨이에 있는 증류수 시설을 파괴한 1 노르웨이 독립 중대가 있다.

1940년에 왕립 해군 또한 됭케르크 철수에서 편성된 왕립 해군 해안반 부대를 지휘했다.[1] 그들은 후에 RN 코만도로 간략하게 알려졌으며, (1942년 8월 19일 디에프 기습 참사에서조차) 해안 상륙 통제에 성공할때까지 아무린 움직임이 없었다. 캐나다 왕립 해군의 W 코만도를 포함한 RN 코만도가 D-Day에서 활동하였다.[2]

1942년, 왕립 해군의 9개 왕립 해병대 보병 대대는 서수 40 ~ 48 코만도로 재편성했으며, 합동 코만도 여단에 영국 육군 코만도를 참가하게 했는데, 전후 육군 코만도는 해체되었다. 왕립 해병대는 3 코만도 여단으로 여단급 규모로 유지하고 있으며, 왕립 해군 함대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다. 모든 왕립 해병(왕립 해병대 군악 근무대가 아닌)은 다른 곳에서 복무하면서 부대에서 지원하거나 개인적으로 전무장 코만도 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코만도에 들어갈 수 있다. 여단은 30 코만도, 40 코만도 (타운톤), 42 코만도 (사우스 햄스, 비클리지, 플라이마우스)와 45 코만도 (스코틀랜드 아르브로아스), 코만도 군수 연대, 539 강습 대대 왕립 해병대, 24 코만도 왕립 공병 연대, 29 코만도 왕립 포병 연대와 더 라이플스, 1 대대로 만들었다. 왕립 해병대는 NATO 내에서 두 번째, 유럽에서 가장 큰 부대이다.[3]

왕립 공군 또한 1942년에 15개 코만도를 편성했으며, 병력 150명을 거느렸다. 이 부대는 코만도 과정을 수료한 훈련된 지원자인 기술자, 병기 제조자와 정비사 중에서 이루어졌다. 그들 RAF 코만도들은 연합군 진격군이 있는 모든 전역에서 함께했다; 주로 뺏은 비행장에서 무장 및 지원으로 아군 전투기의 전방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행장의 전방 위치에 따라, 왕립 공군 코만도는 또한 적의 반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도우며 점령 및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훈련되었다.[4]

일본[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말기(1945년)에, 일본 제국의 전선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가미카제 부대로도 알려진 특공대(일본어: 特攻隊 도쿠고다이[*], 特別攻撃隊 도쿠베쓰고게키다이[*])를 조직하였는데, 이들은 폭약을 가득 실은 항공기와 잠수함 등의 작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장비에 타서 연합군측의 장비에 충돌하는 자살 공격을 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남한 내의 공산주의자가 창설한 조선인민유격대에 의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남한에서의 활동이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남한 내의 공산주의자를 포섭하거나 또는 공작원을 위장 침투시키는 비정규전을 행했다. 휴전 이후, 민족보위성 예하 정찰총국 소속의 124부대를 침투시켜 청화대 기습을 노렸었고, 남한북한의 외교 관계가 우호적인 시기에 잠수함을 이용하여 강원도 강릉지역에 침투했다. 또한 버마의 수도 양곤을 방문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노리고 아웅 산 묘역에서 폭탄을 터트렸으나, 암살에는 실패하였다.

참고[편집]

  1. TheHistoryNet | World War II | Royal Naval Commandos in World War II
  2. Beach Organisation for the Invasion of Normandy, 1944. “왕립 해군 상륙 코만도들 해변에서 상륙하는 화물을 싣은 함선의 출항과 입항을 통제하였다. 각 RN 상륙 코만도는 주요 상륙 지휘관(Principal Beachmaster; PBM)이었는데, 2~3개의 해안반은 각각 상륙 지휘관, 2명의 보조 상륙 지휘관과 약 20명의 수병으로 구성되었었다.”
  3. Neillands, Robin. 《The Raiders — the Army Commandos 1940-46》. Weidenfeld & Nicolson. ISBN 0297794264
  4. http://www.raf.mod.uk/dday/scu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