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호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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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호
통일호 객차 (1988년 촬영)
통일호 객차 (1988년 촬영)
운영 주체 대한민국 철도청
운행 노선 경부선
기간 1984년 ~ 2004년 3월 31일

통일호(統一號)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행했던 열차의 등급 이름이다.

목차

역사[편집]

통일호라는 명칭은 이미 1954년에 운행을 시작한 경부선 특급 통일호에서 사용되었다. 이후 이 명칭이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은 1984년의 열차 등급명 전면 개정때 이후이다. 이 당시 통일호는 무궁화호보다 낮고 비둘기호보다 높은 등급으로 조정되었다. 운행 개시 이후부터 비둘기호 폐지 전까지, 이 열차의 등급은 무궁화호 수준의 수의 역에 정차하면서도 그 운임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러나 1999년 6월 1일 경부선 장거리 열차인 부산~서울간 통일호 열차가 무궁화호 열차로 승격되어 경부선 장거리 통일호열차는 운행을 마감했다.

그 후 2000년에는 민둥산역[1]에서 구절리역 구간을 운행하던 비둘기호가 폐지됨으로써 비둘기호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고, 비둘기호의 폐지는 통일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통일호는 어떤 지역에서는 완행열차로, 어떤 지역에서는 보통열차로 운행하면서 그 지위가 다소 혼란스러웠고 보통과 완행이 결합되거나 완행인데도 보통으로 취급되어 운행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완행열차로 운행된 통일호는 대부분 전산망으로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각 역에서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발매하는, 소위 “특정통일호”로 운영되었다. 반면에 보통열차로 운행된 통일호는 전산망으로 좌석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운행 방식은 역무원들마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이용하는 통일호만 정차하는 역에서 좌석지정식 승차권의 발매를 요구하면 종종 거절되기도 했다.

이전에도 주요 간선에서 통일호의 도태는 계속되었고, 통일호의 존폐 논란도 계속되었다. 결국 2004년 4월 1일한국고속철도의 운행이 예고되면서 통일호 등급의 완전 폐지가 확실시 되었다. 통일호는 2004년 3월 31일경춘선에서의 운행을 끝으로 폐지되면서 무궁화호로 승격, 전환되어 운행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호처럼 도시 근교를 운행하는 저렴한 중단거리 열차로 이동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옛 통일호의 차량 일부를 사용하는 통근열차 등급을 신설하였다. 현재는 수익성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경의선 문산 - 도라산 구간과 경원선 동두천 - 신탄리 구간을 제외하고는 무궁화호수도권 전철 등이 통근열차 운행구간을 대부분 대체해 운행하고 있다.

차량[편집]

철도박물관에 전시중인 통일호 객차 내부
철도박물관에 전시중인 통일호 객차 외부

통일호의 차대번호는 객차형은 13000번대로, 동차형은 9000번대로 배정받아 운행하였다. 가장 마지막까지 운행하던 통일호 객차 중 일반적인 형태의 객차는 대부분 1981년에 제작된 차량[2]이었고, 노후된 무궁화호 객차를 격하 운용하였던 차종은 타이완 탕엥에서 1980년에 제작된 객차였다. 이 외에도 니가타 디젤 동차등을 통일호로 운행하였던 사례도 있었으며, 중앙선에서 운행한 통일호 중 일부는 무궁화호로 운행하던 우등형 전기 동차 2개 편성(20량)을 1998년 12월부터 통일호로 격하 편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 12월 31일까지 정선선을 운행하던 통일호 객차는 1982년에 제작된 원조 새마을호 객차를 정선선 관광 전용으로 개조하여 운행하였다. 1984년 개편 직후의 통일호 도색은 가장 위와 창문 아래 부분은 아이보리 색 계통으로, 창문 쪽과 가장 밑단 및 연결부위의 벽에는 초록색으로 도색하여 운행하였고, 1993년 통일호 도색은 위에는 노란색 중간에는 남색 밑에는 흰색도색으로 단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1995년철도청한국철도로 개명하면서 1996년부터 1999년 사이에 창문쪽에 초록색, 상단과 밑단이 회백색 계통의 CI도색으로 변경되어 운행하였다. 일부 심하게 노후된 통일호 객차와 니가타 디젤 동차를 폐차하면서 통근형 디젤 동차를 새로 제작하여 운행하였다. 객차형 통일호의 노후로 폐차가 진행되면서 등장한 통근열차는 동력형으로 설계됨에 따라 더 이상의 기관차 견인 객차형은 제작 및 운행하는 사례가 없었다. 2006년부터 통일호 등급으로 운행하던 통근형 디젤 동차는 경의선 및 경원선 연장 복선 전철화에 따라 운행 범위가 대폭 축소되면서 총 131량 중 103량이 무궁화호 동차 및 바다열차 등으로 개조되어 운행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외형의 통일호 객차(원조 통일호)[편집]

이 객차의 사양은 1963년 11월에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 일본차량제조, 제국차량제조에서 객차를 수입하면서 등장하였고, 1981년까지 적용되었다. 1965년에는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되었고, 70년대에는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에서 제작되었으며, 1981년에는 대한조선공사,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에서 제작되었다. 창문은 한 쪽으로 18칸의 객실 창문[3]이 정사각형으로 있었고, 2중으로 설치되었다. 창문 개방은 가장 아래에 위치한 개방 장치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위로 끌어올려 개방이 가능하였고, 화장실과 세면장 창문은 상부 개폐가 가능한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내부 시설 면에서 일반실 기준으로 좌석은 72인승으로, 등받이만 앞 뒤로 전환이 가능[4]하였고, 세면대와 동양식 화장실을 설비하였다. 조명은 객실에는 형광등 돌출형 직접조명 방식을, 승강대와 화장실 및 세면장에는 백열등을 설비하였다. 세면기와 화장실 변기는 초창기에는 흰색 사기 재질이었다가 화장실 개량 사업을 통해 스테인리스 재질로 변경되었고, 분뇨를 밖으로 배출하는 비산식은 2000년대 들어 정화조 저장식으로 개조되었다. 냉방기는 천장에 선풍기가 설치되었고[5], 냉방 개조 전에는 창문 개방이 가능하였다. 난방은 별도의 난방차에서 공급되는 스팀을 난방관으로 공급받아 이루어졌다. 1985년 이후로 객차 개량 사업이 추진되어 대한조선공사에 의해 순차적으로 냉방개조가 이루어지면서 전기식 냉난방기가 설비되었고 이에 따라 창문은 개방이 불가능하게 변경되었다. 발전 방식은 초기에는 차량마다 자체적으로 설치된 발전기와 축전지로 객차의 전원을 공급하였으나 냉방 개조가 이루어지면서 발전기와 축전지는 철거되었고 별도의 발전차가 편성되어 운행하였다. 차양막은 위에서 끌어내리는 식이었고 승객의 편의에 따라 차양막의 위치를 단계별로 설정할 수 있었다. 대차에 있어서는 HHBT형 양압식 답면 제동의 프레스강 용접대차를 적용하여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대차의 최대 안전속력은 120km까지 낼 수 있는 정도였다.

구형 무궁화호 격하 차량[편집]

좌석 형태, 착석 가능인원(72인승), 대차, 화장실 오물처리 방식 및 조명방식 등은 모두 일반적인 통일호 객차와 동일하다. 그러나 이 객차는 우등열차로 등장했던 만큼 몇 가지의 큰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로는 일반 통일호 객차에는 없었던 전기식 냉난방기가 기본 사양으로 되어 있었다. 창문은 일반 통일호와는 달리 직사각형의 대형 복층식 전망창으로 한 쪽으로 9칸이 설비되어 있었고, 세면실 창문은 불투명한 유리를 쓴 직사각형 창문[6]을 설비하였고, 화장실 창문은 작은 직사각형 창[7]으로 되어 있었다. 차양막은 커튼이 사용되었으며 화장실 변기는 원래부터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 있었고, 일부 객차는 서양식 변기를 설비하였다.

운행 계통[편집]

통일호의 운행 계통은 너무나 다양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통일호가 운행했던 노선은 과거 비둘기호가 운행해오던 노선 및 현재 무궁화호가 운행하는 노선 대부분을 포함하며, 이에 현재는 폐지된 운행 계통까지 통일호가 운행하였다. 일례로, 서울 ~ 온양온천조치원 ~ 제천처럼 현재는 다른 운행 계통으로 대체되거나 혹은 폐지된 운행 계통의 상당수가 과거에 통일호로 운행되었으며, 송정리 ~ 광주간 셔틀 열차처럼 초단거리 노선이나, 대한민국 철도 운행시간이 가장 긴 12시간을 운행했던 청량리 ~ 부전간 500km 이상의 장거리 열차에도 운행되기도 했다.

과거 운행 노선[편집]

보존[편집]

주석[편집]

  1. 당시 역명은 증산이였다.
  2. 이를 두고 철도 애호가들이 흔히 원조 통일호라고 불렀던 차종이다.
  3. 좌석별 개별 창이다.
  4. 이 때 안장부분은 고정되어 있었다.
  5. 이 때 작동은 개별 텀블러 스위치로 작동시킬 수 있었다.
  6. 객실 창문과 비교하면 면적이 약 절반 정도이다.
  7. 화장실 창의 크기는 지하철 옆면 행선 안내기 정도의 크기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