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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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가 비옥[편집]

함경도와 두만강 일대가 토지가 비옥해서 농사가 잘되다니... 참 믿지 못할 일입니다. 옥저의 위치를 잘못잡았아요. 일제시대때 연구한 일본사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현대 사학자들이 문제요--Breathejustice 2007년 1월 1일 (월) 06:07 (KST)[답변]

옥저의 위치는 함흥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듯합니다. (예와 비슷하죠.) 함흥평야에서도 농사는 됩니다. jtm71 2007년 1월 1일 (화) 23:58 (KST)[답변]
그렇군요. 그러나 주로 중국 사서에서 말하는 옥저는 동옥저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윤내현 교수는 옥저와 예는 요서에 있었고 열국시대에 함경도와 강원도로 이주하며 동옥저와 동예로 불렀다고 나옵니다. 저도 아직 공부중이라서 뭐라 확실한 얘기는 못하겠어요. 나중에 다시 확실하게 공부해서 올께요--Breathejustice 2007년 1월 3일 (수) 07:04 (KST)[답변]
삼국지 동옥저조에 의하면, '옥저는 개마대산의 동쪽 대해에 접해 있으며, 지형은 동북이 좁고 서남이 길어 천 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윤내현 교수는 한사군을 요하 서쪽으로 밀어내기 위해 그렇게 주장하는 듯한데, 한국사에서는 남옥저의 중심지는 함흥 부근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jtm71 2007년 1월 5일 (토) 23:39 (KST)[답변]
삼국지 기록을 제대로 보셔야죠. 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하지 않고 동옥저가 개마대산 동쪽에 있다 했습니다. 윤내현교수는 원래 옥저와 동옥저를 구분하여 요서지방에 있던 옥저가 원래 옥저이고 개마대산 동쪽에 있는 옥저를 삼국지의 기록에 따라서 동옥저라고 한것입니다. 즉 지금 본문에 나오는 옥저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고조선 멸망 이후 ㅇ이주한 동옥저에 대한 설명입니다. --Breathejustice 2007년 1월 6일 (토) 14:24 (KST)[답변]
그렇다면, 따로 항목을 만들어 윤내현 교수의 주장을 그 근거가 되는 논문과 함께 소개하면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사학계의 의견은 중론으로서 존중될 필요가 있습니다. jtm71 2007년 1월 6일 (일) 23:06 (KST)[답변]

옥저가 함경도에 올수 없는 이유[편집]

이러한 이유는 많지만... 한가지만 골라서 말해볼께요. 삼국지에 보면요.
"以沃沮城爲玄菟郡 後爲夷貊所侵 徙郡句麗西北"
옥저성을 현토군으로 하였는데 나중에 이맥(夷貊, 고구려라고 생각됨)이 침략하므로 군을 구려(句麗, 고구려라고 생각됨)의 서북으로 옮겼다

함약 옥저가 함경도에 있었다면 현토가 침략을 받았을때 구려(고구려)의 서북방면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구려의 서북방면이라고 하면 지금의 요서와 내몽골지방으로 대략 생각이 되는데... 함경도땅에 있던 옥저가 요서와 내몽골지방으로 이동하려면 고구려의 중심부를 횡단해서 가야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함경도 지방에 공격받았다고 해서 현토군을 저 멀리 요서나 내몽골로 옮긴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은 옥저가 요서지방에 있다면 설명이 가능해지죠.

윤내현 교수의 말대로 원래 옥저와 한나라가 원래의 옥저위치에 사군 설치한 후 동으로 이동한 동옥저와는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이는 예와 동예에서도 마찬가지죠. 사서에서 옥저가 함경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모두 동옥저입니다. --Breathejustice 2007년 1월 6일 (일) 15:50 (KST)[답변]

그런 주장이 있다면, 개인적인 의견은 배제하고 윤내현 교수의 의견을 별도 항목으로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1월 6일 (일) 23:07 (KST)[답변]

'자기생각'과 사실의 구분[편집]

구분하여 출처를 요구한 부분은 본인생각(Original Research)인 듯합니다만,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참조하시고, 본인생각이 아니라면, 삭제되지 않도록 출처를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10일 (화) 16:44 (KST)[답변]

위키백과에서는 '본인생각'을 지양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봅니다. 문제가 되는 구문은 이렇습니다.

武帝滅朝鮮,以沃沮地為玄菟郡。後為夷貊所侵,徙郡於高句驪西北,更以沃沮為縣,屬樂浪東部都尉
한 무제가 조선을 멸하고, 옥저 땅으로 현토군을 삼았다. 후에 이맥이 침범해 와, 군을 고구려 서북으로 옮기고, 옥저는 현으로 고쳐 낙랑 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이 내용은, 현토군이 옥저 부근에 있다가 고구려 서북으로 옮긴 설명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옥저가 현토군과 떨어져 관리할 수 없게 되자 가까운 낙랑에 속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jtm71 2007년 7월 11일 (수) 11:19 (KST)[답변]

jtm71의 서술도 본인생각(Original Research)입니다. 옥저 부근에 있는 현토군을 고구려 서북으로 옮긴다는 말은 고구려 남동쪽인 함경도의 현토군을 고구려를 가로질러 고구려 서북으로 옮겼다는 말이 됩니다.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가 없게 되죠. 본문에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1일 (수) 21:30 (KST)[답변]
그리고 앞서도 썼듯이 전쟁나서 불리해졌는데, 적을 돌파해서 도주합니까? 그것도 1~2킬로미터도 아니고 수백킬로를 가로질러서 말입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1일 (수) 21:46 (KST)[답변]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밝혔듯이, '본인생각'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본문에 내용이 추가되었겠죠. 본인생각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한사군이라는 것은 행정적인 구분에 불과했고, 현토군을 옮긴다는 것은 파견한 관리의 위치만 옮긴 것이지, 그 땅에 살고 있는 주민을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옥저 전체가 옮겨갔다면 현토군에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지 왜 낙랑에 속하게 했겠습니까 ... 설마 땅 전체를 옮겼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죠 ...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0:19 (KST)[답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옥저 남쪽 예가 망하자 고구려 땅을 통과하여 28만 명이 한나라로 망명했습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참고로 예를 멸망시킨 나라는 고구려입니다.-- 이 의견을 2007년 7월 16일 (월) 15:35에 작성한 사용자는 Knight2000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옥저 남쪽 예가 망하자 28만 명이 한나라로 망명 ...'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면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18일 (수) 04:41 (KST)[답변]

이상의 이유로, 출처표기가 되지 않는다면 1주일 정도 대기하다가 '본인생각' 부분을 주석처리하겠습니다. jtm71 2007년 7월 11일 (수) 11:23 (KST)[답변]

그 의견도 타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행정적인 구분에 불과하다고요? 그렇다면 무엇하러 행정적인 위치를 옮깁니까? 그럴 경우에는 폐지하는 쪽이 타당합니다. 무려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행정 중심지를 옮겨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기라도 합니까?(있다면 좀 근거를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옥저의 위치를 정하는 근거가 "동쪽의 해안 1천 리"가 아닙니다(이건 나중에 추가된 근거이죠). 옥저를 위치를 정한 최초의 기준은 "낙랑의 동쪽"입니다. 다시 말해 낙랑이 있던 평양의 동쪽인 함경도 지역에 예와 옥저를 놓게 된 셈이죠. 그런데 평양에 낙랑이 있었다는 통설 자체가 실증되지 않고 있습니다(실증사학자들의 주장인데 실증이 되지 않고 있죠. 참 어이없는 사실입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2일 (목) 16:35 (KST)[답변]
이의를 제기하려면 제시하는 내용 정도는 읽어 주셔야죠. 행정지역을 옮긴 것은 '이맥의 침입'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 그리고, 옥저가 동해안에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문서에 추가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6:41 (KST)[답변]

링크 내용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나요 ... 그러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국사편찬위원회나 학회에 문의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6:38 (KST)[답변]

문의했습니다. 답변은 "실증된 사실은 없다"(북한과 중국이라서 유적 조사는 사실상 무리라고 하더군요)라고 하더군요. 왜 그게 아직까지 통설로서 남아 있느냐고 하니까, "반론도 실증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어이가 없더군요. 실증사학자답다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물었죠. "왜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통설로서 놔두느냐고?"라고. 답변이 아직까지 없습니다. 2002년쯤에 문의한 사실인데... --Knight2000 2007년 7월 12일 (목) 16:45 (KST)[답변]
'국사편찬위원회'의 'Q&A'란에는 '옥저의 위치'에 대한 문의사항이 없는데요 ...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6:52 (KST)[답변]

'본인생각'이 아니라고 표기한 출처가 저자의 생각 또한 아니라면, 원출처를 표기하거나 그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의견을 적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 jtm71 2007년 7월 13일 (금) 07:41 (KST)[답변]

정확하게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이덕일의 주장인 것처럼 하여 다른 주장을 끼워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옥저를 둘러쌀 만한 대국이 없었다'는 내용이 정말 이덕일이 저술한 책에 있습니까 ... 인용한 사서는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18일 (수) 17:26 (KST)[답변]

출처의 삭제 ...[편집]

추가되는 내용의 근거이니 출처를 삭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7:06 (KST)[답변]

추가되는 내용의 근거이니 출처를 삭제할 이유가 없다면 그것을 반대(황해 쪽에 옥저가 있었다)로 해석해도 된다는 말인지요? --Knight2000 2007년 7월 12일 (목) 23:00 (KST)[답변]
황해가 고구려 동쪽에 있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23:38 (KST)[답변]
옥저가 고구려 동쪽에 있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과 "고구려 동쪽"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한국 평안도 중강진 동쪽이 한국의 동쪽은 아닙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6일 (월) 15:48 (KST)[답변]
옥저가 고구려 동쪽에 있었다는 말은 있는데요 ... jtm71 2007년 7월 16일 (월) 20:44 (KST)[답변]

그리고, 옥저의 남.북에 위치한 나라들이 모두 바다에 접하고 있는데, 옥저가 있을 수 있는 다른 곳이 있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요 ...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17:08 (KST)[답변]

중국 사서의 "바다"[海]는 모두 발해만 또는 황해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동해(동중국해)나 남해(남중국해)라고 할 때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런데 옥저와 예의 위치 비정에서만 고조선의 동해(또는 현재의 동해)라고 해석해야 할 합리적 이유를 먼저 출처를 제시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대륙삼국설이 나쁜 이론입니까? 사료대로라면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옥저가 황해 쪽에 있더라도, 대륙삼국설을 취하지 않고 모순 없이 설명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동해 쪽에 있어서 생기는 모순이 더 많습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2일 (목) 22:59 (KST)[답변]

'海'가 아니라 '大海'입니다. 그리고, '합리적 이유'를 요구하기 전에, '중국 사서의 바다는 모두 발해만 또는 황해'라는 근거 부터 제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

대륙삼국설은 최소한 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읍루가 북경 근처에 있었습니까 ...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 동해안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 jtm71 2007년 7월 12일 (목) 23:19 (KST)[답변]

그러면 그것이 동해인 이유도 제시할 수 없겠군요. 사실상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당시 중국인이 동해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부터 증명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16일 (월) 15:46 (KST)[답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내용도 그 한 예입니다. 중국 사서의 바다가 모두 황해라면, 일본도 황해에 있었다는 주장입니까 ... jtm71 2007년 7월 16일 (월) 20:46 (KST)[답변]

사료의 해석대로라면 “왜”는 섬나라가 아닌데요. 왜가 섬나라라면 흉년이 들었다고 배 타고 바다 건너 신라까지 구걸하러 갑니까? 그게 합리적 해석입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19일 (목) 15:35 (KST)[답변]
동이전에서 인용된 '위략'에 의하면, 왜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었군요.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찾아는 보았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19일 (목) 17:40 (KST)[답변]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중국사료를 참조하여 왜(倭)는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jtm71 2007년 7월 19일 (목) 18:26 (KST)[답변]
왜가 일본 열도에 있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당시(4세기 이전) (1) 왜의 항해술이 신라를 자주 침탈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습니까? (2) 흉년에 구걸하러 신라까지 갈 만큼 항해술이 뛰어났습니까? 그리고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 보면, (3) 변진의 독로국은 어떻게 왜와 "접"해 있었을까요? 독로국이 바다 건너 일본에 있었습니까? (4)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고 했습니다. 왜가 한의 남쪽인 한반도의 남부에 있었다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한이 일본 열도에 있었다고 봐야 합니까? 또한 후한서 동이열전 한조에 보면, (5)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라고 합니다. 역시 왜가 한반도의 남쪽이 아닌, 한이 일본 열도에 있었습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33 (KST)[답변]
아래 의견은 안 읽었군요 ...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0:47 (KST)[답변]
동이전의 '大海'가 황해가 아니라 대양(大洋)에 연한 동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인데, '중국 사서의 바다는 모두 발해만 또는 황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체 누구의 의견인지요 ...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07:10 (KST)[답변]

책에 무조건 있다고 주장하지 말고, 실제로 그런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옥저는 예와 고구려, 읍루 사이에 위치하는데,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큰 나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라는 내용이 제시한 책에 있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19일 (목) 17:38 (KST)[답변]

무조건 당신이 옳고 무조건 저는 틀립니다. 됐습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34 (KST)[답변]
제시했더니 지워 버린 사람이 무슨 글을 그렇게 씁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47 (KST)[답변]
그 출처가 맞느냐는 것이죠. 확인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21일 (토) 00:49 (KST)[답변]
그리고 출처를 명시하랬더니 "삼국지 동이전"? 삼국지 동이전이 한글로 된 책입니까? 그 원문이 한자(한문)으로 되어 있으니, 본문처럼 해석한 해석본을 출처로 제시해 달라는 뜻이지 삼국지 동이전이 출처인지 몰라서 그걸 적습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47 (KST)[답변]
원본이 링크되어 있으니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문장도 아닙니다만 ... 그리고, 출처가 반드시 한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0:44 (KST)[답변]

물음에는 대답할 건가요 ... '옥저는 예와 고구려, 읍루 사이에 위치하는데,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큰 나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라는 내용이 제시한 책에 있습니까 ...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0:44 (KST)[답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타난 “大海”의 해석이 통설과 다르다.' 이런 주장이 제시한 책에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시한 페이지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확인하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1:33 (KST)[답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편집]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타난 “大海”의 해석이 통설과 다르다.' ...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 보충설명이 필요합니다. jtm71 2007년 7월 19일 (목) 17:46 (KST)[답변]

말 그대로 “통설과 다르다”입니다. 앞서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토론의 다른 부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15 (KST)[답변]

문제는 본문을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위키백과가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jtm71 2007년 7월 20일 (금) 20:45 (KST)[답변]

추측에 의한 내용[편집]

'최근에 이르러 후한서의 내용을 받아들여 ... 옥저를 고조선의 속지로 비정하게 되었다' ... 이런 내용이 국사교과서에 있나요 ... 전자교과서의 고조선에는 옥저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 jtm71 2007년 7월 19일 (목) 18:06 (KST)[답변]

추측? 1992년 국사 교과서 지도는 평안도 지역만입니다. 2002년 국사 교과서 지도는 평안도를 비롯한 함경도, 강원도 북부, 황해도, 남만주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것마저 추측입니까? --Knight2000 2007년 7월 20일 (금) 15:14 (KST)[답변]

1992년 국사 교과서의 지도가 '위만조선'의 영역인지 확인 바랍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변경 내용이 주장하는 대로라고 하더라도 옥저의 위치는 변동이 없습니다만 ... jtm71 2007년 7월 21일 (토) 07:27 (KST)[답변]

개인 의견[편집]

'옥저는 예와 고구려, 읍루 사이에 위치하는데,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큰 나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타난 “大海”의 해석이 통설과 다르다.'

이 주장들은 제시하신 자료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를 참조하시고, 개인적인 의견에 해당되는 내용은 스스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jtm71 2007년 7월 21일 (토) 17:38 (KST)[답변]

해당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다면 본문에 내용 추가가 가능합니다. jtm71 2007년 7월 24일 (화) 17:24 (KST)[답변]

통설이라 하더라도 출처를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편집]

통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가장 일반적인 학설로서,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또한 인용하기 때문에 통설입니다. 그런데 출처 달아 달라고 하니 그냥 [출처 필요]라는 표시를 지워 버리는 행위는 그것이 통설이 아니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통설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 곳에도 출처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부디 옥저와 동예의 땅이 비옥하다면 그렇게 기록하거나 주장한 문서나 논문을 출처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최초 주장자도 밝혀 주면 좋겠습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24일 (화) 15:51 (KST)[답변]

출처는 명시되어 있습니다. jtm71 2007년 7월 24일 (화) 17:08 (KST)[답변]
명시되어 있는 게 아니죠. 출처 달아 달라고 하니까 그제야 달아준 것은 "명시되어"가 아니라 "명시해"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Knight2000 2007년 7월 26일 (목) 14:11 (KST)[답변]
그건, 《한국민족문화대사전》 - '옥저'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출처요구'만 삭제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으로 생각되어 원문을 추가한 것입니다. jtm71 2007년 7월 26일 (목) 18:05 (KST)[답변]
그건 그렇다 치고 ... '옥저를 서북쪽으로 옮겼다는 직접적 서술은 없습니다. 출처를 제시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제시하신 《살아있는 한국사》의 98페이지 4번째 ~ 5번째 줄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jtm71 2007년 7월 27일 (금) 00:20 (KST)[답변]
그건 원래 제가 했던 말 아니던가요? (위에서 jtm71 님은 단순히 행정 구역을 옮겼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저 또는 그 말을 믿고, “직접적 서설은 없다”라고 했고요. 어째 처음과는 달리 지금에 와서는 서로 주장하는 바가 반대로 되어 버렸네요. --Knight2000 2007년 10월 20일 (토) 08:53 (KST)[답변]

존속기간[편집]

기원전 2세기부터 5세기까지 존재했던 종족이라고 되어있는데 출처가 없으며 종족이 출현한 시기나 소멸한 시기는 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워야 한다고 봅니다.P76837 (토론) 2013년 3월 12일 (화) 23:46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