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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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목록에서 두음법칙이 지켜지지 않은 내용이 더러 있습니다. 유를 류로, 양을 량으로, 육을 륙으로, 등이 있습니다. 모두 고치는게 낫겠지요? --김태균 2007년 1월 22일 (월) 11:42 (KST)[답변]

의견 저는 일부만 고쳤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凉’의 경우 양으로 쓰이는 곳이 있기도 하고, 량으로 쓰이는 곳이 있기도 합니다. ‘凉州’는 양주로 읽히지만, ‘西凉’은 서양이 아닌 서량이라 읽힙니다. 일단 제가 정사 삼국지를 보면서 정비 좀 하겠습니다. 曹操孟德(寧我不人毋人不我) 2007년 1월 22일 (월) 13:03 (KST)[답변]

한글 맞춤법에 맞는 표기입니다. 한글 맞춤법의 두음 법칙란을 살펴보시면 외자 이름의 경우 성에 붙여쓰면서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11항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야, 여, 예,요, 유, 이'로 적는다.

[붙임 2]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도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
신립(申砬) 최린(崔麟) 채륜(蔡倫) 하륜(河崙)

- χε 아이리디 (토론) 2007년 1월 22일 (월) 13:07 (KST)[답변]

두음법칙에 맞게 고쳤습니다. 정사의 제목이 대부분, 성씨의 묶음이라 두음법칙으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김원중 교수 책에는 혼동이 있었는지 일관성없게 경우에 따라 왔다갔다 합니다.)그리고 이름부분은 아이리디님 말씀대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Hun99 2007년 1월 22일 (화) 20:11 (KST)[답변]

흠, 대개 ‘凉州’ 또는 ‘西凉’은 량주 또는 서량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 13주 가운데 한글로 “양주”라 읽히는 곳이 2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구분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쯤 되려나요?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22:43 (KST)[답변]

정통론과 사건의 선후[편집]

정통론이 진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진수가 그렇게 명시했던가요? 아니면 후대의 사람들이 진수를 거론했던가요? 정통론이 진수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 옳지 않습니다. 그냥 진수는 자신의 나라를 기준으로 역사를 기술했을 뿐이죠. 그것을 후대 사람들이 “정통을 무엇으로 삼았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정통론의 시작은 그렇게 말한 누군가이지 진수는 아닙니다. 그래도 진수가 정통론의 시작이라 주장한다면, 저는 당연히 정통론의 시작은 “유비”라고 주장합니다. 애초에 유비가 국호를 한(漢)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런 논쟁도 필요가 없었겠죠. 더구나 진수보다 유비가 시기적으로 앞선 사람이니 당연히 정통론의 시작은 유비이지 진수가 아닙니다. 또한 촉한 정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비가 황손이기 때문에, 또는 한나라 계승을 천명했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비 스스로가 하나의 정통“론”을 주장했던 셈입니다.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19:51 (KST)[답변]

정통론 논쟁이 진수에게서 시작되었다가 아니라 훗날 정통론 논쟁을 불러오게 된다고 적었습니다. 정통론 자체의 시작은 공자로까지 올라갑니다...춘추전국을 거친 정통과 참위의 분별 사상은 유학을 배운 진수에게도 연결되고요, 진수가 쓴 삼국지에도 영향을 주고요. --Hun99 2007년 11월 5일 (월) 19:57 (KST)[답변]
“이는 진수의 진나라는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는 비정통으로 본 것이다.”라는 부분은 이미 진수가 진나라의 정통을 주장했다고 말한 셈입니다. 이게 정통론이 아니라면 정통론 논쟁에 대해 쓴 제 글은 헛소리였을 뿐입니다. 죄송하네요. 헛소리 좀 했습니다.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20:17 (KST)[답변]
'주장'이란 개념을 너무 엄밀하게 접근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수가 위나라의 정통론을 주장했다고 서술되어 있지 않는데 말이죠.) 쉽게 말하면 진수가 위나라와 진나라의 정통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정면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고 다만 칭제나 연호의 문제에서 간접적으로 진수의 생각이 드러나기에 주장은 안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수가 정통론을 주장했다는 말은 본 문서에 없습니다. 법률문서도 아닌 역사 소재의 문서에 개념상 너무 엄격하게 접근하시는 것 같습니다. --Hun99 2007년 11월 5일 (월) 20:41 (KST)[답변]
첨언하면 나이트2000님께서 인용하신 부분은 후대의 사가들의 중론입니다. 출처도 달아드리겠습니다.--Hun99 2007년 11월 5일 (월) 20:44 (KST)[답변]
제가 너무 엄격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 다르고 아 다른 상황에서 어와 아를 같게 볼 뿐입니다. (그리고 후대의 사관도 유학적 사관과 성리학적 사관이 전혀 다릅니다. 유학적 사관에서는 진수의 사관은 지극히 정당했죠. 성리학적 평가에서는 많이 다르지만) 그리고 위의 인용을 Hun99 님이 말한 바에 알맞게 고치면 “이는 진수의 진나라는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세워진 나라이기에 위를 정통으로 삼고 촉과 오는 비정통으로 본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 부분도 역시 아 다르고 어 다른 상황이죠(진수 자신이 그렇게 보았다는 말이 없으므로 후대의 판단임을 밝혀야 합니다).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21:51 (KST)[답변]
정통/비정통이라는 단어를 진수가 직접 써야 진수의 견해가 파악되는 게 아닙니다. 조조 일가에는 제호까지 다 일일이 붙였는데 손가는 황제 직위 임에도 몽땅 이름으로 썼습니다. 황제의 이름을 그대로 적다니, 진수가 어느 쪽을 정통으로 본지는 뻔한 거 아닙니까... 조위를 진수가 정통으로 본 것은, 어떤 견해가 있다가 아니라 통론입니다. 학계에 이견이 없습니다. --Hun99 2007년 11월 5일 (월) 22:07 (KST)[답변]
사후적 판단의 문제 아니냐라는 말씀에, 일례를 들어보죠. 공자는 당연하게도 유학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 자신은 당대에 스스로 유학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현재 전해지는 가르침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내용으로 가르침을 설파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공자 이후의 사람들과 현재의 우리는 공자를 유학의 창시자로 보며 또한 공자가 어떠어떠한 유학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우 타당한데 사후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수가 조위를 정통으로 보았다는 진술은 진수의 진의를 굴곡하지 않는 범위이므로 타당한 진술입니다. --Hun99 2007년 11월 5일 (월) 22:22 (KST)[답변]
“정통/비정통이라는 단어를 진수가 직접 써야 진수의 견해가 파악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정통론 자체를 유비나 진수가 직접 거론해야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는 말도 틀립니다. 그러한 행위(역사 서술 행위, 국가 건국 행위) 자체로 정통론을 이미 주장했다고 봐야 합니다. 또한 이 경우에 유비가 촉한을 건국할 때 한에 대한 계승의지를 가지고 정통성을 주장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통론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국호만 봐도 촉한이나 촉이 아니라 漢입니다). 이렇게 보면 진수보다는 유비에게 정통론이 만들어지게 된 원인이 있게 됩니다.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22:31 (KST)[답변]
네, 유비도 정통론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 맞고 논쟁의 일원 맞습니다. 다만 진수는 사서를 직접 남겼으니 진수의 견해는 어떠했다라는 사학계의 평가가 나오는 것이고요. 사가들의 논의는 사가의 사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니 학술적인 정통론 논쟁에는 유비는 가라앉고 진수가 떠오르게 되지요. --Hun99 2007년 11월 5일 (월) 22:34 (KST)[답변]
그거야말로 역사가의 뻔뻔한 책임 회피 아닙니까? 하긴 사마천의 한족/비한족(또는 친 한족/반 한족)을 구분하여 포폄한 서술도 “객관적 서술”이라고 부르는 게 역사가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Knight2000 2007년 11월 5일 (월) 22:39 (KST)[답변]

'또한 진수가 정확한 역사 서술을 위해'로 시작하는 문장의 수정 이유[편집]

수정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진수가 정확한 역사 서술을 위해 민담이나 전승, 일화, 풍문 등을 대부분 배제하여 이야기로 꾸미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는데 이를 채워주어 훗날 삼국지 평화, 삼국지 연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문장을 수정한 이유는 부분적인 사실의 확대 해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수가 민담, 전승등을 배제했고 배송지가 이를 채웠다고 했는데 채운 것이 민담을 배제한 것을 역사로 채울 수는 없을 테니 민담으로 채웠다는 말이겟지요. 그러므로 이 문장은 배송지주에 기록된 민담, 전승, 일화, 풍문 등이 삼국지연의에서 활용되었다는 말인데 이는 오해할 소지가 많은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 활용된 배송지주는 민담이나 풍문인 경우도 있지만 역사서에 기록된 일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백사 사건을 보면 삼국지에는 기록이 없고 배송지 주에 기록이 있는데 배송지 주는 세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위서와 세어, 잡기인데 세어와 잡기는 민담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위서는 역사서죠. 또 칠종칠금의 경우도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책이 한진춘추인데 한진춘추는 현재 전해지지 않아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비교적 믿을 만한 역사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민담이나 전승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현재 칠종칠금을 믿는 역사학자는 없는 것 같지만 말이죠.

사실 삼국지연의에서 유명한 허구들은 대부분 삼국지는 물론 삼국지주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원결의라든가 제갈량이 동남풍을 부르는 대목, 제갈량이 조조에게서 화살 십만개를 얻는 장면, 오관육참장, 관우가 문추를 죽인 일, 관우가 화웅을 죽인 일, 방통이 하루만에 고을일을 처리한 일, 제갈량이 팔진도로 육손을 물리친 일등은 모두 삼국지주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삼국지주와는 관련이 없고 삼국지와만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화타가 관우를 치료한 일, 초선의 미인계는 삼국지를 토대로 꾸며낸 이야기이죠.

따라서 삼국지연의에서 민담이나 전승등을 토대로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대부분 삼국지주와도 별 관련이 없고 삼국지주가 할용된 경우는 민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국지의 허구는 소설가의 상상력이나 삼국지주가 아닌 전승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삼국지주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는 경우 그 부분을 대부분 민담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진수가 정확한 역사 서술을 위해 민담이나 전승, 일화, 풍문 등을 대부분 배제하여 이야기로 꾸미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는데 이를 채워주어 훗날 삼국지 평화, 삼국지 연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자료들이 삼국지연의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해야 겠지요.

예전에는 배송지주가 삼국지연의에 영향을 준 것이 배송지주를 설명하는데 정말 필요한 대목인가에 대해 의문이 있어 삭제를 했었는데요. 삼국지주는 역사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의의는 지금 전해지지 않는 사료들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일까요? 지금 이 사실이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좋아하고 요즘 삼국지연의가 유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연의가 최근 십여년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 인기는 어느정도 사그러들겠죠. 삼국지연의가 계속 인기있는 소설로 남긴 하겠지만 최근은 조금 과열되어 있으니까요. 인기가 식은 후에도 이 설명이 과연 역사자료를 설명하는데 필요한가? 저는 이러한 의문 때문에 그렇게 했었습니다. 백과사전이니까 간략하게 중요한 사실만 설명해야지 사실을 단순히 나열만 하면 안되니까요.

하지만 삼국지연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고 문학작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사항이니까 이번에는 수정해 보았습니다. Kimsw0520 2008년 3월 3일 (월) 14:38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4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삼국지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4월 12일 (금) 21:2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