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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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독립 선언문

텍사스 독립 선언(Texa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텍사스 혁명멕시코에서 텍사스 공화국의 공식적인 독립 선언을 가리킨다. 워싱턴 온 더 브라조스의 1836년 회담에서 채택되어 1836년 3월 2일 서명되었다.

배경[편집]

1835년 10월, 멕시코령 텍사스의 주민들은 텍사스 혁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텍사스 내에 텍사스 혁명의 궁극적인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 목표가 멕시코로부터 완전한 독립이라고 믿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당시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멕시코 정부보다 훨씬 자유로운 1824년 멕시코 헌법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36년 회담이 소집되었다.

이 회담은 1832, 1833년, 1835년의 자문회의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비록 1835년 전투 중 한 두번씩은 참가하기는 했지만, 1836년의 회담에서 많은 대표단들이 텍사스에 막 이주해온 젊은이들이었다. 대표단 대다수가 전쟁파였고, 텍사스가 멕시코에서 독립을 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41명의 대표단이 2월 28일 워싱턴 온 더 브라조스에 도착을 했다.

전개[편집]

그 회담은 3월 1일 리처드 엘리스를 의장으로 하여 진행되었다.[2] 대표단은 독립선언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5인 위원회를 선출했다. 위원은 조지 차일드레스가 이끌었고, 에드워드 콘래드, 베일리 하드맨, 그리고 콜린 맥킨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맥킨니는 위원회 중 최고령인 70세였다. 그들 위원은 하루 만에 초안을 작성했으며, 대부분 차일드레스가 작성한 초안을 본회의가 열리기 전에 역사학자들에게 검토를 하게 했다.[3]

선언은 3월 2일 이견없이 승인되었다. 주로 존 로크토마스 제퍼슨의 저서에 토대를 두었고, 그 선언은 다음과 같이 공표하며, 독재에 불만을 표했다. 이 선언으로 공식적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성립된다.[4]

“멕시코 정부는 정당한 권력이 파생되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를 포기하고, 폭제와 억압을 했다.[5]

특히 멕시코에서 분리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의명분으로 세웠다.

  • 연방 공화국을 세운 멕시코의 1824년 헌법은 불법적으로 폐지하고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하에서 중앙집권주의의 군사 독재 정치로 변화했다.
  •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에 이주민을 불러들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공화제의 정부를 약속했지만, 이 보증을 위반했다.
  • 텍사스는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주로 멕시코 코아우일라 주와 합병했지만, 그 때문에 텍사스는 너무 멀리 떨어진 살틸로(Saltillo, 코아우일라 테하스 주도)로 수도가 결정 되었다.
  • 정착민들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무기를 가질 권리"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의 정치적인 권리가 부정되었다.
  • 공립 교육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 이주민들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미국의 독립 선언을 토대로 하여, 텍사스의 선언은 미국의 정치 원리에서 많은 기념할만한 표현이 포함하고 있다.

서명[편집]

워싱턴 온 더 브라조스의 독립선언이 선언되었던 건물 복제품, "여기에서 나라가 탄생하다!"라는 안내문구가 있음
텍사스 공화국

59명이 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 그들 중 10명은 텍사스에서 60년 이상을 살아왔으며, 1/4은 이주한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6]

주석[편집]

  1. Roberts and Olson (2001), p. 98.
  2. Davis (1982), p. 38.
  3. Roberts and Olson (2001), p. 144.
  4. Roberts and Olson (2001), p. 145.
  5. Roberts and Olson (2001), p. 146.
  6. Scott (2000), p. 122.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