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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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셴쭈
湯顯祖
출생 1550년 9월 24일
명나라 장시 성 린촨
사망 1616년 7월 29일 (65세)
명나라 쓰촨 성 청두
별칭 자(字)는 의잉(義仍)
아호(雅號)는 옥명(玉茗), 옥명당(玉茗堂), 왕명당(王茗堂), 해약(海若)
직업 문관(文官)
극작가(劇作家)
시인(詩人)
국적 명나라

탕현조(탕셴쭈, 중국어 간체: 汤显祖, 정체: 湯顯祖, 병음: Tāng Xiǎnzǔ T'ang Hsientsu[*], 1550년 9월 24일 ~ 1616년 7월 29일)는 중국 명나라 시대 후기의 문관(文官), 극작가, 시인이다.

자(字)는 의잉(義仍)이며 호(號)는 옥명(玉茗), 옥명당(玉茗堂), 왕명당(王茗堂), 해약(海若)이다.

장시 성(江西省) 임천(臨川)에서 태어나 33세에 진사에 급제. 난징의 태상박사(太常博士)·예부주사(禮部主事)를 역임했으나 재상을 탄핵하여 좌천되고, 48세 때 관을 물러난 그는 자적함 가운데서 사작(詞作)을 즐기다 세상을 마쳤다.

30세경부터 극작을 시작. <자채기(荊釵記)> <환혼기(還魂記)> <남가기(南柯記)> <한단기(邯鄲記)> 4전기는 이른바 그의 대표 걸작으로서 <임천사몽(臨川四夢)>이라든가 <왕명당사몽(王茗堂四夢)>이라 칭하여 높이 평가되고 애호받았으며, 염려(艶麗)·농후한 관능적 향기에 넘쳐, 명대 곤곡(崑曲) 전기(傳奇)의 대표작으로서 일세를 풍미했다. 사몽(四夢)이란 4편(四篇), 또는 꿈에 유래된 이야기에 연유된다. 그 문체는 희곡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문학적이었으므로 상연할 때에는 각색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명대 극작가는 권력 밖에서 고투한 원대 잡극가와는 달리, 관계에서 뜻을 이룬 현관(顯官)이나, 왕족의 여기적(餘技的) 교양에서 나온 것으로, 그 내용은 황당한 신선담, 풍류 문인의 유락 일사(遊樂逸事), 또는 상투적인 재자 가인(才子佳人) 전기 등 문인 취미의 격식 속에 박혀서 사회를 보는 눈이 예리하지 못하고 생기를 결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嘉靖) - 만력(萬曆)에서 명말에 걸쳐, 중국의 봉건사회가 새로운 단계(이른바 '자본주의'의 맹아기)에 들어서는 시기에 강남(江南) 극계에 등장하여, 계통적으로도 태주학(泰州學)파나 동림당(東林黨) 등, 당시 진보적 문인 그룹과 유대가 깊었던 탕현조의 희곡 작품에는 그 때까지의 재자 가인 전기의 한계를 넘어 개성(個性) 해방, 봉건제 비판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과제와 대결한 면도 엿보인다. 그 점은 특히 그의 대표작 <모란정 환혼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환혼기>(牡丹亭) 55장(場)은 남송 시대의 이야기다. 두려랑(杜麗娘)이라는 미소녀가 꿈에 이상적인 남편 유몽매(柳夢梅)와 정을 맺어, 꿈에서 깬 뒤부터는 밤낮을 두고 연모한 끝에 죽어버리나, 3년 후 신의 힘으로 부활하여 청년과 떳떳이 맺어진다는 이야기로 작자의 훌륭한 필치에 의해 일대 로망으로 알려져 있다.

탕현조의 문집(文集)으로서는 <옥명당집(玉茗堂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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