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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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섬

타히티 섬(프랑스어: Île de Tahiti)은 남태평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한 소시에테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2007년센서스에 따르면 이 섬에는 178,333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도는 북서 해안에 있는 파페에테이다.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이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역사[편집]

지리[편집]

타히티 지구

타히티는 크고 작은 두 섬이 지협으로 연결되어 조롱박 모양을 하고 있는 섬이다. 큰 것이 타히티 누이, 작은 것이 타히티 이티라고 한다. 화산이 활동하는 섬으로, 최고봉은 해발 2,241m에 달하는 오로 헤나 산이다. 섬 주위를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고, 화산 특유의 검은 모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웃 무레아 섬까지는 18km로 고속선으로 30분, 비행기로 7분이 소요된다.

정치[편집]

프랑스는 자국의 영토로 편입 이후 섬을 현대적인 리조트로 축조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바꾸어 갔다.

프랑스 정부는 핵실험을 섬 주민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역설했다. 관광으로 인한 수입 증가와 핵실험 얽힌 경제 원조와 일자리를 제공하여 섬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대가로 핵 실험을 통해 아름다운 산호 환초를 파괴하고, 도민의 자존심을 빼앗아 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전 공용어로 도민이 사용하던 타히티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공공 장소와 학교 등에서도 프랑스어 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자율성의 확대와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인 뿌봐나아 오오빠의 독립 운동은 유명하다. 1991년 수도 파페에테에서 시위대와 헌병대의 충돌이 일어난다. 1995년 9월 핵실험에 반발한 폴리네시아 주민들은 수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대를 조직하였다. 타히티 국제공항과 수도 파페에테에 있는 경찰서를 습격, 투석과 방화 등 전례없는 격렬한 폭력 시위를 일으켰다.

2004년 6월 프랑스 영토가 된 이후 처음 원주민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오스카 테마루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관광 산업을 중심으로 프랑스에 맞춘 경제 체제에서 탈피하는 것을 제창했다 .

2006년 6월 26일 제 2회 프랑스 오세아니아 정상회의 때,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대부분의 제도가 독립을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국민투표를 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비정부기구(Non - Governmental Organizations, NGO )로, 가브리엘 테디아라히(Gabriel Tetiarahi) 대표로 있는 "히티 타우"(HITI TAU), 앙리 히로가 활동하는 그룹 "테마나 테 누나아"가 있다.

주민[편집]

대부분 폴리네시아계이며, 백인과 중국계 주민도 약간 있다. 폴리네시아 중 주민의 75%가 타히티에서 생활하고 있다.

갤러리[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