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민주국
| 존속 기간: 1895년 5월 23일 - 1895년 10월 2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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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타이베이 시 (타이난 시로 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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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관화, 대만 민난어, 하카어, 대만방언 | ||||
| 정부 형태 | 공화국 당경숭 유영복 (사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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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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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1895년 어림 |
2,980,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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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청나라 냥 | ||||
대만민주국(臺灣民主國) 또는 타이완 민주국(중국어: 臺灣民主國/台湾民主国, 영어: Republic of Taiwan)은 1895년 5월 25일, 타이완의 친청나라 인사들이 일본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정부체이다. 1895년 10월 23일 일본에 의해 해산당했다.
[편집] 역사
| 선사 시대 50,000 BC – AD 1624 | ||||||||
| 다두 왕국 1540 – 1732 | ||||||||
| 네덜란드 통치 시기 1624 – 1662 | ||||||||
| 스페인 통치 시기 1626 – 1642 | ||||||||
| 정씨왕국 1662 – 1683 | ||||||||
| 청나라 통치 시기 1683 – 1895 | ||||||||
| 타이완 민주국 1895 | ||||||||
| 일제 시대 1895 – 1945 | ||||||||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타이완 (중화민국 통치 시기) 1945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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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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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대만은 청나라에게 병합된 다음 복건 성 순무의 관할하에 있었다. 1884년에 청불전쟁이 일어나면서 프랑스군은 대만 북부의 석탄 광산에 주목하고 대만을 근거로 중국의 화남지방을 통제하려 하였다. 청조는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순무급의 유명전을 파견하였다.
1885년에 성(省)을 설치하였으며 유명전을 순무로 임명하여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대륙의 양무운동과 같이 대만의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던 중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가 패전하고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게 된다. 1895년 5월 8일 이토 히로부미와 오정방이 연대(煙臺)에서 비준서를 교환하게 되어 대만을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소식이 대만에 전해지자 대만인들은 '청조의 매국행위'에 항의하고, 일본과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여 대만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것에 패하여 항거하였다. 그러나 청조는 기한 안에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기 위하여 대만순무 당경숭에게 대만을 철수해 내륙으로 건너오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신사인 구봉갑(丘逢甲)이 천여 명을 이끌고 순무 청사에 가 당경숭에게 항일을 지휘해주도록 요청하였다. 당경숭도 이에 응하기로 하여 구봉갑 등은 1895년 5월 25일에 '대만민주국'을 선포하고 당경숭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대만민주국이 성립된 이후 당경숭은 각부와 지방의 관리를 대부분 전직 관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군사도 대만에 주둔하였던 청군의 잔여 병사들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유영복을 민주대장군, 구봉갑을 의용군통령으로 임명하였으며 각 지방에도 방어 태세를 갖추어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하였다.
한편, 일본은 비준서 교환 후 무력으로 대만을 접수하기 위하여 5월 10일에 육군대장 가바야마 스게노리를 대만 초대총독 겸 대만 접수 전권대표로 임명하여 대만을 접수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동안 대만 각지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대만은 일본에 의하여 무력으로 진압되어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때까지 식민통치를 받았다.
[편집] 대만민주국의 대통령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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