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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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모습과 그의 서명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어: Claudio Abbado, Cavaliere di Gran Croce OMRI, 1933년 6월 26일 ~ 2014년 1월 20일[1])는 이탈리아지휘자이다. 밀라노의 유력한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 미켈란젤로 아바도가 교수로 있던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이후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이력[편집]

1958년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국내에서의 기반을 세웠고, 1963년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하며 관현악 및 오페라 지휘자로서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아바도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으며,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전래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물론 현대 오페라도 매년 공연하였고, 알반 베르크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작품을 대상으로 연주회 시리즈를 열기도 했다. 라 스칼라에서 재직할 당시에 아바도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도 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65년잘츠부르크 축제 때 처음 지휘한 바 있는 아바도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빈 오페라의 음악 감독을 지내며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호반시치나, 그리고 슈베르트피에라브라스, 로시니랭스로의 여행 등을 공연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는 안드레 프레빈의 뒤를 이어 런던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았으며 1989년부터 2002년까지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재직했다. 그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권위주의를 해소하겠다는 생각하에 상임지휘자의 이름 조차 부르지 못하고 미스터 마에스트로라 부르던 관행을 깨는 등 분위기 쇄신에 노력했으나 역으로 단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2000년에 위암 진단을 받은 아바도는 소화기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 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2003년에 공연을 하였고,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아바도의 아들은 오페라 감독인 다니엘 아바도이다.

평가[편집]

아바도는 고전파 음악부터 낭만파, 현대음악 작곡가들까지 매우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을 녹음하였고, 교향곡부터 협주곡 반주, 오페라까지 많은 장르의 음악을 공연했고, 녹음했다.

고전파 음악에서는 두 차례 전집을 남긴 바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유명하다. 아바도는 80년대 빈 필과 첫 번째 전집을 완성하고,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시절 두 번째 전집을 완성했고, 두 번째 전집은 시대악기 연주 운동의 영향을 받은 조너선 델 마의 판본을 사용해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낭만파 시대의 작품들 중에서는 말러교향곡 녹음들이 유명하다. 말러 녹음은 흔히 70~80년대에 빈 필,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녹음들, 이후 베를린 필과의 녹음들,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퇴임 이후에 남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영상물 세 군으로 나뉜다. 아바도의 쇤베르크슈톡하우젠, 루이지 노노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의 연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 청소년 관현악단(1978년)과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1986년)의 창설자이기도 한 아바도는 젊은 음악가들과의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수상 및 서훈[편집]

서훈[편집]

수상[편집]

명예박사학위[편집]

페라라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애버딘 대학교, 아바나 대학교

주석[편집]

  1. È morto Claudio Abbado、il POST、2014년 1월20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