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자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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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at indépendant du Congo
깃발 문장
영토
공용어 프랑스어
중심지 보마
면적  ?
인구 약 800만 명
통화 벨기에 프랑

콩고 자유국(État indépendant du Congo)은 1885년부터 1908년까지 존재한 나라이며, 국가원수는 벨기에의 왕인 레오폴 2세이다. 중심지는 보마이다.

콩고 강(자이르 강) 분지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에 해당한다. 1880년대 벨기에의 왕 레오폴 2세를 대표로 한 유럽 투자가 집단의 사유지로 건립되었다. 1874~77년 H. M. 스탠리가 콩고 강을 탐험할 때 왕은 이 지역에 주목했었고, 1877년 11월 콩고 강을 따라 이루어지던 유럽인들의 무역을 위해 아프리카 내륙지방을 개방하려고 상(上)콩고 연구위원회(후에 콩고 국제협회로 바뀜)를 결성했다. 1879~82년에 스탠리는 이 위원회의 후원에 따라 상콩고 지방에 기지를 건설하고 지방통치자들과 협정을 맺었다. 1884년에 이르러 콩고 국제협회는 아프리카의 450개 독립부족과 조약을 맺고 협회와 연관된 모든 영토를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선언했다. 1884~85년에 열린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담에서 이곳의 이름은 콩고 자유국으로 채택되었으며, 유럽 열강들은 레오폴을 이곳의 주권자로 인정했다. 1890년대초 레오폴은 자신의 군정(軍政)을 내륙지방에까지 확대했고, 1890년에는 루알라바 강 지역의 아랍인 노예상인들까지 그들의 지도자 티푸 티브가 잔지바르로 떠난 뒤 이에 굴복했다. 1891년 레오폴의 군대는 구리 등 광물이 풍부한 카탕가(지금의 샤바)의 통치자 음시리를 쓰러뜨린 뒤 그곳을 점령했으며, 이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했다. 1890~98년 말레보풀 아래의 콩고 강 급류들을 우회하는 철도가 건설됨으로써 내륙까지 연결되는 수송로가 생겼으며, 이 강 상류와 그 지류들은 모두 항행이 가능한 곳이다.

레오폴의 압제하에서 이 지역은 주민들에 대한 폭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레오폴의 부하들은 야생 고무·야자유·상아 등을 모으기 위해 주민에게 강제노동을 시켰고, 마을에 할당된 고무 수집량을 달성하도록 채찍을 휘두르고 볼모를 잡는 방법을 동원했으며, 사소한 법규 위반에 대해서도 벌로 팔다리를 자르기 일쑤였다. 광산과 농장에서 이런 야만적 행위가 널리 자행되는 동안 이 지역의 전체인구는 2,000만~3,0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후 마침내 영국과 그밖의 유럽 국가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레오폴은 권좌를 벨기에 정부로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1908년 콩고 자유국이 폐지되고, 벨기에 의회가 지배하는 식민지가 되면서 이곳은 벨기에령 콩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1960년,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