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패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콘스탄틴 패츠
Konstantin Päts
1934년 당시의 모습
1934년 당시의 모습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제1대 대통령
임기 1938년 4월 24일 ~ 1940년 6월 21일
후임: 레나르트 메리(2대)

국적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출생일 1874년 2월 23일(1874-02-23) (139세)
출생지 러시아 러시아 타흐쿠라나 파리쉬
사망일 1956년 1월 18일 (81세)
사망지 소비에트 연방 소비에트 연방 트베리 주
정당 애국동맹
학력 타르투 대학교
종교 동방정교회
배우자 헬마 패츠

콘스탄틴 패츠(에스토니아어: Konstantin Päts, 1874년 2월 23일 ~ 1956년 1월 18일)는 에스토니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독재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에스토니아 역사에 있어서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목차

일생 [편집]

콘스탄틴 패츠와 그의 가족들

콘스탄틴 패츠는 1874년 2월 23일 당시 러시아 제국의 소속 하에 있던 에스토니아타흐쿠라나 파리쉬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에 관한 일화에 따르면, 그는 헛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의사가 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1]. [모호한 표현]

그의 아버지인 야콥 패츠는 하임탈리에서 활동하던 건축가였으나, 상류 계층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추방되었다. 어머니인 올가 투마노바는 에스토니아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인이었는데, 이런 이유는 아버지의 종교를 개종하게 했다. 또한 그의 형제 역시 아버지와 같은 종교를 믿었다.

콘스탄틴 패츠는 자신의 고양인 타흐쿠라나 파리쉬에서 교육을 받았다[1]. [모호한 표현] 이듬해 그의 가족은 파르누 근처에 있는 래퀼라로 이주했다. 후에 그는 라트비아에서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2].

패츠는 타르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깃발 장사를 하였다[2]. 그는 타르투에서 하던 종교 활동을 포기하고, 탈린으로 이주하여 정계에 들어갔다.

정계에 들어가다 [편집]

패츠는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런데 그 중 수차례 투옥되었고, 자신의 아내마저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독립 후에도 독일의 침공 당시 투옥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1934년 쿠데타를 일으켰고, 언론과 기타 정당을 탄압하는 등 독재나치즘 형태의 정치를 하였다. 1938년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추방 [편집]

1939년 소련이 발트3국에 군대를 보냈는데, 이는 발트3국이 독재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그 당시 리투아니아안타나스 스메토나에 의한 극우 독재가 이루어졌고, 라트비아카를리스 울마니스에 의한 독재가 실시되기도 했다). 1940년 에스토니아소련에 점령당하였고, 자신은 바슈키르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있는 어느 감옥에 투옥되었다[3].

죽음 [편집]

옥속에서도 패츠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는 소련 당국에 자신의 실정을 쓴 편지들을 자꾸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56년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1990년 그의 묘는 탈린으로 옮겨졌다.

주석 [편집]

  1. Konstantin Päts oli üks Eesti Vabariigi loojatest
  2. Konstantin Päts
  3. XX sajandi kroonika, II osa; Eesti Entsüklopeediakirjastus, Tallinn, 2004; p. 62

바깥 고리 [편집]

Flag of Estonia.svg 제1대 에스토니아 대통령 Coat of arms of Estonia.svg
전 임
신설
1938년 4월 24일 ~ 1940년 6월 21일 후 임
레나르트 메리
콘스탄틴 패츠 · 레나르트 메리 · 아르놀드 뤼텔 · 투마스 헨드리크 일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