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1세
| 동 프랑크 왕 | |
| 재위 | 911년 ~ 918년 |
|---|---|
| 이전 왕 | 루트비히 유아왕 |
| 다음 왕 | 하인리히 매사냥꾼왕 |
콘라트 1세 (Conrad I, 독일어: Konrad; 890년경 – 918년 12월 23일)은 동프랑크 왕국의 귀족으로 906년 부터 프랑켄의 공작이었고 911년부터 죽을 때까지 동프랑크의 왕이었다. 비록 그는 "독일의 왕"(rex Teutonicorum)이라는 칭호를 쓰진 않았지만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동프랑크 왕인 루트비히 유아왕의 후계자로 이후부터는 독일의 군주로 간주된다. 아버지 콘라트와 구별을 위해 콘라트 청년왕(Conrad the Younger)로도 부른다.
[편집] 생애
콘라트는 같은 이름의 튀링겐 공작인 아버지 콘라트와 황제 아르눌프의 딸 글리스무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촌수로는 즈벤티볼트와 그보다 나이 어린 유아왕 루트비히의 외조카뻘이 된다. 콘라트 가문은 마인의 영주인 바덴베르크 가문과 프랑켄의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906년 벌어진 바덴부르크 가문과의 전투에서 아버지 콘라트 공작이 죽었고 아들 콘라트가 프랑켄의 공작의 지위에 올랐다.
913년 바이에른 후작 레오폴트의 미망인이었던 슈바벤 공작가문이었던 알라홀핑가의 쿠니군데(Kunigunde)와 결혼했다. 쿠니군데 역시 카롤링거 왕가의 외손으로 아득하게나마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었으며, 독일인 루트비히 2세의 외손녀딸이자 공주 기셀라의 딸이고, 카를 3세, 카를로만의 조카 딸이었다.
프랑켄 공작 콘라트는 911년 동 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카롤링거의 왕 유아왕 루트비히가 죽자 카롤링거 왕가 출신으로는 즈벤티볼트의 어린 두 아들이 있었으나, 콘라트는 외사촌 형제들을 제치고 911년 11월 10일 동프랑크의 포르크하임[1]에서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동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출되었다.[2] 그가 라인 강 동쪽의 독일 귀족들 모두의 지지를 받았는지 아니면 프랑크족과 작센족의 지지만을 받았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1]
아득하게 계승권을 가졌지만 카롤링거 왕조의 직계 후손이 아닌데다가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그의 치세는 매우 불안했다. 일부 귀족들은 그의 집권에 반발했고,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왕국 사이에서 로타링기아의 귀족들은 서프랑크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 단순왕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후의 그의 치세는 작센, 바이에른 및 슈바벤의 귀족들과의 경쟁에 맞서 왕권을 확립하는 일에 소진되었다. 그의 군사 행동은 대부분 실패했고 자신의 가문을 굳건한 독일의 왕가로 올려 놓지 못했다.
콘라트는 918년 12월 23일 바일베르크에서 죽었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아들이 없던 콘라트는 임종시에 자신의 동생 에베르하르트에게 유언으로 왕위를 작센의 공작 하인리히에게 넘기라고 하였다. 당시 하인리히는 침범하는 마자르족에 맞서 왕국의 영토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베르하르트와 다른 귀족들은 유언을 지켜 하인리히를 독일의 왕으로 선출했다.
[편집] 가계
- 증조부 : 게버하르트(Gebhard, Count of Lahngau, ? - 879년, 가우(Lahngau) 백작)
- 할아버지 : 우도 2세 네우스트리아(Udo II von Neustria, 바터루(Wetterau) 공작)
- 숙부 : 베렌가르(Berengar, 헤센 백작)
- 아버지 : 콘라드 폰 튀링겐(Conrad, Duke of Thuringia, ? - 906년 2월 27일) 튀링겐 공작
- 어머니 : 글리스무트(Glismut)
- 동생 : 에베르하르트
- 처 : 쿠니군데, 동프랑크의 왕 루트비히 2세의 딸 기셀라의 딸
- 장인 : 베르톨드, 슈바벤의 그라프
- 장모 : 기셀라, 동프랑크의 왕 루트비히 2세의 딸
[편집] 주석
- ↑ 가 나 콘라트 1세 - Daum 백과사전
- ↑ 당시 유력 왕위 후보인 작센 공작 오토가 양보했다는 설도 있다.
| 전 임 아버지 콘라드 폰 튀링겐 |
프랑켄 공작 906년 - 918년 |
후 임 사위 에베르하르트 |
| 전 임 루트비히 유아왕 |
동 프랑크의 왕 911년 - 918년 |
후 임 하인리히 매 사냥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