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케 테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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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케 테무르( 扩廓帖木尔; 擴廓帖木爾; ? ~ 1375년)는 원나라북원의 장군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몽골 황자의 딸이고, 그의 아버지는 중국인으로 성이 왕씨였다. 원래 이름은 왕보보(王保保)였지만 원나라에 의해 코케 테무르라는 몽골식 이름을 얻었다. 가장 잘 알려진 몽골 장군 중의 하나이다.

원래 그는 허난성에서 살았으며, 차간 테무르의 조카이다. 차간 테무르는 산둥성에서 홍건적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는데, 1362년에 사망했다. 코케 테무르는 삼촌의 자리를 물려받아 산둥에서 홍건적의 반란을 진압했다.

코케 테무르는 황태자의 파벌에 서서 볼라드 테무르를 중심으로 한 반황태자 파벌과 대립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타이위안에 근거지를 틀었다.

1364년 볼라드 테무르는 다통에서 대도로 진군하여 황제 휘하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다. 그러자 태자 아유시리다르는 타이위안으로 달아나 코케 테무르의 지지를 구하였다. 코케 테무르는 대도를 공격했고, 1365년 볼라드 테무르는 측근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코케 테무르에 의해 사살되었다.

코케 테무르는 황태자를 복위시키고 보답으로 해남왕과 비서실의 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내전은 주원장이 남중국에서 권력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코케 테무르는 원나라 군대에게 반원 반란군에 대한 공격을 명했지만, 그를 초창기부터 따르던 중국인 장교를 포함한 장교단에 의해 배반을 당했다. 그리고 아유시리다르도 그를 저버렸으나 황제 혜종에 의해 정치 군사적인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번의 중요한 패배 후에 그는 허난과 타이위안을 명나라에 잃고 간쑤성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1368년, 원나라는 중국에서 물러나고 북원으로 전락한다.

1370년 혜종 토곤 테무르가 사망하고 아유르시리다르는 몽골고원의 카라코룸에서 황좌를 계승했다. 코케 테무르는 새로운 북원 황제의 세력에 참여해서 황제의 호위를 수행하였다. 1372년, 그가 이끄는 북원군은 사막에서 서달(徐達)이 이끄는 명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명군이 2만 명 정도 피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쑤성에서 다시 서달과 대적할 때 북원군은 심하게 몰려서 고비 사막으로 달아나야 했다.

코케 테무르는 북원군을 거느리고 다시 중국으로 진군하였고, 북원의 영향력을 산시성(山西省)까지 팽창시켰다. 그러나 그는 1375년 사망하고 말았고, 1378년에는 황제 아유르시리다르도 사망하였다. 그들의 죽음 이후에 북원은 급격히 힘을 잃었고, 중국 진출을 단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