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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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catacombe라고도 함.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한 벽장이 붙은 좁은 통로나 회랑으로 이루어진 지하묘지.

카타콤(Catacomb)는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이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서 예배하였다. 이 명칭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3세기 후반에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의 유해를 잠시 동안 안장했던 것으로 유명한 산세바스티아노 성당( 로마 시 근처 아피아 街道에 있음)의 지하묘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용어는 의미가 확대되어 로마 시 주변의 모든 지하묘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뒤 다시 또 의미가 확대되어 원래 매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의 여부와 관계 없이 굴과 방으로 이루어진 모든 지하 시설물들을 한데 묶어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그 예로 파리의 카타콤이라는 것은 원래는 사용하지 않는 채석장이었으나 1787년부터 묘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카타콤은 매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했다. 사람이 죽었을 경우 지하에 있는 가족 납골당에서 매장일과 기일을 맞아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을 치렀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시절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 수반되었던 성체성사도 이 납골당에서 치러졌다. 어떤 카타콤은 커다란 방과 부속 예배실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성인과 순교자에게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사실상의 성소(聖所)로서의 기능을 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산세바스티아노 사원의 카타콤에 있는 트리클리아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를 기리는 음식(refrigeria)을 함께 먹고 성인들에 대한 자신의 기도문을 벽에다 새겼다.

카타콤에는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고 비밀통로가 있어서 모래밭이나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으므로 박해와 소요 사태가 닥쳤을 때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그 예로 교황 식스투스 2세와 4명의 부제(副祭)들은 258년에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할 때 산세바스티아노 사원의 카타콤 안에서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민족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곳으로 피신했다.

카타콤은 그리스도교도나 로마인만이 유일하게 만들어낸 것은 전혀 아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돌로 된 지하의 굴 속에 매장하는 관습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권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카타콤을 발견할 수 있다. 몰타에서는 이 섬의 고대 수도 근처에, 시칠리아에서는 타오르미나와 시라쿠사 근처를 비롯한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근처에 있다. 레바논의 시돈(지금의 사이다) 근처를 비롯해 튀니지의 하드루메툼(지금의 수사) 근처에 카타콤이 있으며 이탈리아에는 여러 곳에 널리 분포해 있으나 특히 나폴리 주변과 고대 에트루리아 지역에 많이 있다.

로마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도의 카타콤은 시 중심부에서 4.8㎞ 정도 반경 안에 분포해 있다. 40개의 굴방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도시로 들어오는 간선도로 근처에서 발견된다. 이것들은 알려져 있는 모든 카타콤 가운데 큰 편에 속하는 것들로 일부는 관람객들에 개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