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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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Chernobyl disaster, reactor accident at the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또는 체르노빌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모스크바 기준 시간)에 소련(현재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후 소련 정부의 대응 지연에 따라 피해가 광범위화되어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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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 이 부분의 본문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있었다. 그 이름을 딴 체르노빌에서 약 18km 북서쪽으로 떨어진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1977년에 원자로 1호기가 준공되면서 가동을 시작했으며, 사고 당시 총 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었고, 2기의 원자로가 추가로 지어지고 있었다. 각 원자로는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를 운용하고 있었으며, 발전소에 설치된 4개의 원자로가 모두 소련에서 설계된 RBMK-1000형 원자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각각의 원자로는 1G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비록 원자로의 설계 자체가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실제로 4호기의 폭발 이전에 작은 사고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러한 결함은 감추어졌고, 폭발 직전까지 체르노빌 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로 홍보되고 있었다. [2]
[편집] 사고
이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에, 체르노빌 발전소의 원자로 4호기의 비정상적인 핵 반응으로 발생한 열이 감속재인 냉각수를 열분해시키고, 그에 의해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함으로써 생긴 사고이다. 폭발은 원자로 4호기의 천정을 파괴하였으며, 파괴된 천장을 통해 핵 반응을 통해 생성된 방사성 물질들이 누출되었다.
[편집] 사고의 발생
사고 전날인 4월 25일부터, 원자로 4호기는 정기 점검을 위해 가동이 잠시 정지될 예정이었다. 원자로 4호기에는 이전부터 원자로의 가동 중단에 대비해 원자로의 가동 중단시 냉각 펌프와 다른 제어 장치들을 가동할 수 있는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있었다.[3] 그러나 이 발전기는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약 1분의 시간이 걸렸고, 그 때문에 원자로의 가동 중단 시 즉시 냉각 펌프가 작동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확실하였다. 그 때문에 발전소에서는 주 전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원자로의 터빈 발전기의 관성에 의한 회전이 원자로의 냉각 펌프 등에 얼마나 오랫동안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계획하였다. [4][5] 이 실험은 이미 이 이전에 체르노빌의 다른 원자로와 체르노빌이 아닌 다른 원자력 발전소에서 여러 번 실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체르노빌 발전소에 설치된 것과 같은 반응로, 즉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에서는 전원 공급이 정상보다 낮은 수준에서 반응로가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소는 실험을 강행했다. [5]
실험은 원자로의 열 출력을 정격 열 출력의 20%~30%인 700MW로 낮추어 실시될 예정이었다.[6] 4월 25일 오전 1시부터 원자로의 출력은 정상 출력의 1/2 수준인 1600MW로 낮춰졌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발전소의 배전담당자가 계속해서 원자로를 가동하여 전력을 공급할 것을 주장했고, 이 때문에 실험이 지연되어 출력 강하가 정지되었다. [3][7] 이 때문에 25일 오후까지 원자로의 출력은 낮은 상태로 유지되었다. 이 낮은 출력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 원자로에는 정상 상태보다 적은 수의 중성자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정상 상태에서는 축적되지 않는, 중성자를 흡수하는 동위원소 제논-135 (Xe-135)가 축적되기 시작하였다.[7]
실험 중단 상태는 4월 26일 새벽 1시경에 해제되었으며, 이 때 원래 목표했던 전력수준으로 강하가 시작되었지만, 운전자의 조작 미숙으로[6][8] 출력은 정상의 1% 수준인 30MW 정도[7][8]까지 떨어졌다. 발전량을 예상했던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실험을 진행하던 연구원들은 원자로의 제어봉을 안전한 수준 이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축적된 제논에 의한 제논 독작용(Xenon poisoning)이 발생[6]하여 출력은 예상 수준에 못미치는 200MW 정도의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 때 원자로의 비상 냉각 시스템에 달린 냉각 펌프는 정상의 6개보다 많은 8개가 작동하고 있었고,[6] 이 때문에 냉각수의 유량이 증가하여 냉각 시스템의 증기압이 감소했는데, 냉각재인 경수가 중성자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는 핵반응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서 계속 작동할 경우 원자로의 비상 정지 시스템에 의해 반응이 중지되기 때문에, 실험에 참여한 연구원은 원자로의 비상 정지 시스템을 정지시켰다.
4월 26일 1시 경까지 취해진 이 모든 조치들은 반응로 내부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그 이후 4월 26일 1시 23분에 실험이 실시되었고, 실험의 목적을 위해 발전용 터빈에 도달하는 증기를 차단했다.[6][7][3] 그 결과 냉각 펌프에 전달되는 전력이 감소, 냉각 시스템의 냉각수의 유량이 감소했다.[3][8] 충분히 냉각되지 않은 반응로 내부의 열에 의해 냉각수가 끓어올라 증기로 변했다. 증기량이 증가하면서 원자로 설계상의 결함으로 인해 핵반응 속도가 증가하였으며,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가 급격하게 분열하기 시작하였다.[7][8].
이것을 안 기술자들은 오전 1시 23분 40초경 긴급 정지 시스템을 작동시켜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기 시작했지만, 원자로의 설계에서 제어봉이 완전히 삽입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8초로 출력을 제어하기에는 지나치게 느린 속도였다. 제어봉이 삽입되는 동안 노심에 축적되어 있던 제논이 다량 발생한 중성자를 흡수하여 중성자를 흡수하지 않는 동위원소 제논-136으로 변환되었고, 또한 또다른 중성자 흡수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냉각수를 제어봉이 밀어내 버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6]
-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 결과, 원자로의 출력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여 정상 출력의 100배에 가까운 30만 MW 정도까지 상승하였다.[8] 출력이 상승하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핵반응에 의해 발생한 열이 냉각수를 끓어오르게 했으며, 수증기에 의해 반응로 내부의 압력이 증가하여 반응로에 증기 폭발을 일으켰다. 이 1차 폭발은 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노심을 파괴하여 반응로가 대기에 직접 노출되게 하였다.[3] 이후 대기에 노출된 수증기와 노심은 서로 반응하여 수증기를 산소와 수소로 분해시켰고, 산소가 흑연 제어봉을 분해하여 일산화탄소를 생성시켰고, 이 수소와 일산화탄소가 공기중에서 다시 반응하여 2차 폭발을 일으켰다. 이 2차 폭발은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을 파괴했다.[7]
[편집] 사고의 경과
4호기 원자로의 폭발 후 열흘 동안, 원자로의 노심에 있던 방사성 연료와 그 반응 생성물이 다량으로 누출되어, 폭발로 인해 감속재인 흑연 1200톤이 발화하여 생긴 기류를 타고 공기 중에 분출되었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노심에 있던 총량의 3.8%에서 20%가량이다. [9] 사고 당시 노심에는 200톤 가량의 우라늄이 있었으므로, 누출된 양을 질량으로 계산하면 약 10톤에서 40톤 사이이다. 누출된 방사성 원소의 종류는 40종 이상[10] 이고, 100종 [11]이나 520종 [12] 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들 중 가장 위험한 아이오딘-131은 50% 가량, 세슘-137은 30% 가량 누출되었다. 비활성 기체인 제논은 모두 누출되었다. [5] 누출된 방사성 물질에 포함된 방사능의 총량은 약 14 엑사베크렐(1018 베크렐)[5]로, 이는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에서 방출된 양의 약 400배 정도이다.[11]
[편집] 사고 처리
[편집] 사고 현장 처리
사고 직후 10시간 동안, 화재로 인해 인접한 3호기가 폭발할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소방대원들은 물을 뿌려 원자로 주변의 화재 진압을 시도했다. 이후 5월 5일까지는 군용 헬리콥터 30대 이상이 동원되어 2400톤의 납, 1800톤의 모래 및 붕소 등을 뿌려 내부의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이 시도는 오히려 원자로 내부의 온도를 높여 방사능의 추가 누출을 불러일으켰다. [13] 최종적으로는 액체 질소를 원자로 내부에 투입함으로써 온도를 낮추어 화재를 진압했다. 화재는 5월 6일까지 지속되었다.
화재가 진압된 후 1992년까지 소련 정부는 등록된 것만 60만 명에 이르는 인원 [14] 을 "해체작업자"(러시아어: ликвида́торы, 영어: Liquidator)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여, 흩어진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고 파괴된 원자로와 원자로 내부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을 봉인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들은 발전소의 직원, 우크라이나의 소방관과 소련의 많은 구성국에서 온 군인, 광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11] 이들의 작업으로 사건 발생 7개월 후에는 "석관"이라고 이름지어진 콘크리트제의 봉인 시설이 완성되었다.
[편집] 인근 주민 대피
사고 초기에, 소련 정부는 사고를 공표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인근 주민들은 아무런 대비가 되지 않은 채 발전소에서 분출된 막대한 양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6시간이 지난 4월 27일 오후에야, 발전소에서 4km 떨어져 있는 도시 프리피야트의 주민 45,000명이 1,100대의 버스를 통해 도시로부터 소개되었다. [15] 이후 열흘 동안 사고 직후 발전소 주변 30km 반경에 살고 있던 11만 6천 명의 시민이 원래 주거지로부터 소개(疏開)되었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21만 명의 시민이 추가로 소개되었다. [16]
사고가 발생했던 4월 26일 아침, 사고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막 원자력 발전소에 출근한 과학자의 의복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17] , 조사 결과 이 물질이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스웨덴 정부가 소련에 해명을 요구하여, 4월 28일 소련 정부는 사고를 공표하였다. [18]
[편집] 피해
[편집] 인명 피해
소련 정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실험을 행하고 있던 2명의 연구원은 폭발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화재를 진압하고 방사능 물질을 격리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방사능에 노출된 소방 대원 및 발전소 직원 등 28명이 사고 후 3~4개월 사이에 사망했다.[11][5] 같은 작업을 한 인부 한 명도 비슷한 시기에 심정지로 사망했다. 그 이후에도 19명이 추가로 사망하였고, 2006년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 집계로는 총 56명이 이 사고로 인해 사망된 것으로 집계되었다.[19] 또한 화재 진압 과정에 동원된 600명의 자체 소방대[20]와 다른 인부 등 총 3400명[19]이 사고 직후의 고도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이들은 0.7시버트에서 13시버트 정도로 피폭당했다. 3.5밀리시버트가 자연 방사능 조사량임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들 이외에도 체르노빌 사고를 처리하는 데 600,000~800,000명 사이[11][5][21](정확한 숫자는 불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는데, 이들 중 비교적 초기에 투입되었던 20만 명은 높은 수준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5] 공식 보고에 따르면 이들 중 2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21] 하지만 이들의 사망 원인과 방사능 피폭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11]
사고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에서만 1800건 이상의 피폭 지역의 소아 갑상선암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11][22] WHO의 보고서[23]에 따르면, 주변 지역의 0-17세 사이의 소아 중에서 5000건 가량의 소아 갑상선암이 보고되었으며[24], 앞으로 50년간 5,000~45,000건 정도의 사례가 더 보고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25] 갑상선암 이외에도 피폭 주변 지역의 주민은 백혈병, 유방암 등의 증상 발생이 빈번하게 보고된 바 있다. 그린피스의 발표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으로 2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편집] 경제적 피해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은 체르노빌 주변의 15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11] 당시 풍향 때문에 낙진의 70%는 벨라루스에 집중되었다.[26] 사건 당시 벨라루스의 전 국토의 22%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으며, 이는 2005년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벨라루스 정부는 2016년에도 여전히 국토의 16%가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26] 방사능에 따른 벨라루스의 경제적 피해는 약 2350억 달러[27]로, 이는 1997년 당시의 벨라루스의 국내 총생산의 10배 이상이 되는 수치이다. 벨라루스 말고도, 우크라이나[28]와 러시아[21]에도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있었다.
특히 체르노빌 주변은 순간적으로 3천에서 3만 뢴트겐에 이르는 고도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사람의 거주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1986년 4월 27일 부터 5월 6일까지, 프리피야트, 초르노빌, 그리고 주변 지역의 주민 11만 6천명의[11] 소개가 이루어졌다. 최종적으로는 35만 명 이상이 그들이 살던 곳으로부터 떠나가야 했다. 그러나 노령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기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일부는 이주하지 않고 생활을 계속했으며, 다시 돌아와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도 있다.[19]
[편집] 결과
203명이 즉시 입원하게 되었으며, 3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28명이 급성 방사선 장애로 판명되었다. 그들은 사고를 수습하도록 모인 소방관과 구급원이었지만, 연기등이 방사능 노출로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프리피야트에 살고 있던 약 5만 명을 포함한 합계 13만 5천 명이 이 지역으로 부터 대피하게 된다. 보건 당국은 70년동안 원자로로부터 방출된 5~12EBq의 방사능 물질 오염에 따라 발암율이 약 2%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게다가 10명이 이 사고로 인한 암으로 사망한다.
IAEA는 1986년까지 조작원의 운전 조작 미숙을 사고의 주요한 원인으로 인용하고 있었다.그러나 1993년 1월에 IAEA는 조작원의 조작 미숙도 있었지만 설계 결함이 근본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소련의 과학자는 체르노빌 4호기가 이산화 우라늄 연료 및 핵분열 생성물은 약 190kg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물질중 방출된 양은 13%~30% 정도로 추정된다.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오염은 주변의 지방 전체에 퍼진 게 아니고 기후에 의존해 불규칙하게 흩어졌다. 소련 및 서방 과학자들의 보고서는 벨라루스가 구소련 전체에 닥친 오염의 약 60%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북서 우크라이나 일부와 러시아 연방의 넓은 지역도 오염되었다.
[편집] 영향
폭발시, 원자로 내부의 방사성 물질 10톤(추정) 정도가 대기중에 방출되어 북반구 전역에 확산되었다.
주변지역의 가축과 농작물에 방사성 물질이 축적되어 고기와 우유 등도 오염되었다.
2000년 4월 26일의 사고 발생 14주년 추모 식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 사고 처리 종사자 86만 명 중, 5만 5천 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내(인구 5천만 명) 방사성 노출자 3백 4십 2만 7천 명 중, 작업원은 86.9%가 병에 걸려 있다.
주변 주민과 유아, 소아 등의 갑상선 암의 발생이 높아졌다.
사고 직후, 유럽산 스파게티 판매량이 일본에서는 일시적으로 급감했다. 또한, 아이오딘이 방사선에 좋다는 유언비어가 돌아 일시적으로 가격이 상승했던 경우도 있었다.
[편집] 단기적 영향
사고 후에 복구와 청소 작업에 종사한 노동자들은 엄청난 양의 방사선 노출을 받았다. 작업에 종사한 노동자 대부분은 방사선량을 측정하기 위한 개인 측정계를 장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들의 방사능 노출량을 추정만 하고 있다. 측정계가 사용되고 있는 경우에도 측정 순서는 가지각색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대량의 방사능 노출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소련 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30만 명에서 60만 명이 원자로로부터 30킬로미터 떨어진 대피 구역의 청소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약 8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오염 구역에서 일하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도 해체 등 청소 작업자로서 리스트에 포함하고 있는등 자세한 인원은 추정할 수 없다. 어쨌던, 사고가 발생한후 1년이 지날때 까지 청소 작업에 종사한 노동자들은 21만 명이 추정되는데, 보통 추정 평균 165밀리 시버트 정도로 방사선을 쬐었다.
[편집] 주민
오염된 구역에 있었던 일부의 아이들은 갑상선에 최대 50그레이 정도의 높은 방사선을 쬐었다. 이것은 오염된 현지의 우유나, 비교적 수명이 짧은 동위체인 방사성 아이오딘이 체내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연구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아이들의 갑상선 암 발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IAEA의 보고에 따르면 '사고 발생시에 0세부터 14세였던 아이들 1,800명이 갑상선 암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통상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증가 비율은 기록되지 않았다. 발생한 소아 갑상선 암은 대형으로, 활동적인 타입이며 조기에 발견되었으며 처치할 수 있었다. 처치는 외과 수술과 전이에 대한 아이오딘 131 치료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이러한 처치는 진단된 모든 케이스에 대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는 아이와 젊은 청년층에서 발생한 700건 가까운 갑상선 암을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있다고 밝혔다. 10건의 사망이 방사선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출되는 갑상선 암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중 적어도 일부는 스캐닝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방사선이 야기하는 갑상선 암의 전형적인 잠복 기간은 약 10년인데 비해, 일부 지역에서는 소아 갑상선 암의 증가가 1987년부터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 증가가 사고와 무관한지는 충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백혈병이 이 사고와 관련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앞으로 명백하게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염 구역과 주변 지역에 위치해 있던 주민들에 대해 방사선이 야기하였다고 여겨지는 선천적 이상, 유산, 및 그 외의 질병에 대해서는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있다는 증거는 없다.
[편집] 장기적 영향
사고 직후 있었던 건강에 대한 영향은 주로 반감기 8일짜리인 방사선 아이오딘에 따른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반감기가 약 30년인 스트론튬-90과 세슘-137에 따른 토양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높은 레벨인 세슘-137은 토양의 표층에 있어, 그것이 식물과 곤충, 버섯에 흡수 되어 현지 식량 생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의 실험(1997년 무렵)에 따르면 이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나무안의 세슘-137의 레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오염이 지하수나 호수나 연못 같이 수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하는 몇개의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2001년, Germenchuk). 비나 지하수에 따른 이동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으로 실증되고 있으며, 세슘-137이 바륨-137로 자연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편집] 전지구적 영향
IAEA의 기록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방출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방사능 오염의 400배 정도로, 20세기 중순에 발생된 대기권 내핵 실험으로 일어난 오염의 100에서 1,000분의 1이라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는 국지적인 재해이며, 전지구적인 재해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편집] 자연계에 대한 영향
제1회 체르노빌 사고의 생물학적, 방사선 의학적 관점에 대한 국제 회의(1990년 9월)에 참석한 소련 과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해당 발전소로 부터 10킬로미터 구역에서의 방사성 강하물의 레벨은 4.81GBq/㎡라고 한다. 대량의 방사성 강하물로 말미암아 고사한 '붉은 숲'이 10킬로미터 구역 내의 장소의 바로 배후 지대에 퍼지고 있다. 이 숲은 사고 후 지극히 대량의 방사성 강하물로 말미암아 고사해 적갈색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가리켜 그렇게 이름 붙었다. 사고 후 청소 작업 중에서 4킬로미터 제곱인 숲의 대부분을 매립할 수 있었다. 붉은 숲이 있었던 장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편집] 피난
소련 정부는 사고로부터 36시간 후에 체르노빌 주변에 살고 있던 주민의 피난을 개시한다. 대략 일주일 후인 1986년 5월까지, 해당 플랜트로부터 3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약 11만 6천 명)이 이주했다.
소련 과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28만 킬로미터 제곱이 185kBq/㎡이 넘는 세슘-137로 오염되었다. 약 83만 명이 이 구역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약 10만 5백 킬로미터 제곱이 555kBq/㎡이 넘은 세슘-137로 오염되었다. 이 중, 벨라루스에 7천 킬로미터 제곱, 러시아 연방에 2천 킬로미터 제곱, 우크라이나에 천 5백 킬로미터 제곱이 속한다. 약 25만 명이 이 구역에 살고 있었다. 이러한 보고 데이터는 국제 체르노빌 프로젝트에서 증명하였다.
[편집] 다른 사고와의 비교
체르노빌 사고는 그 규모만으로도 엄청나다. 원자력 상용 발전 역사상, 방사선에 따른 사망자가 나온 것도 이것이 처음이었다.
[편집] 민간인에 대한 장기적 영향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이 사고로 인해 생활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무수히 많아서, 3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고 때문에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약 60만 명이 사고 처리에 종사하게 되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방사능 오염 구역에 살고 있다. 한편, 이러한 영향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비교적 적은 양의 방사능 노출밖에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들 사이에 사망자수와 암, 선천선 이상이 증가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게다가 그러한 증거가 있었다 하더라도, 방사능 오염과의 관련성은 확실하지 않다.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체르노빌 사고로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갑상선 암의 발생 증가 증거는 스캐닝 계획의 결과로서 분명히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학적 조사는 아직도 분석 중이다.
예산 부족, 불충분한 시계열적 역학 조사, 빈약한 통신설비 등으로 인해 긴급 공중 위생 문제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적절한 과학 인프라 스트럭처가 부족하기 때문에 민간인에 대한 연구는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환경 회복과 방사능 오염이 되지 않은 식료품 개발과 식료품 유통 경로 개발, 공중 위생 대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상당한 예산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 기구와 국제 사회는 광범위 하게 물류 지원과 인도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유럽 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의 역학 조사를 강화해, 모든 종류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현재에도 적어도 반년에 한 번 정도 정기적 건강 진단을 받고 있어 건강에 대해 불안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일부 남성은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여성은 수염이 진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편집] 야생 생물
인간이 사고 주변 지역으로부터 대피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큰 부담이 되었지만, 반대로 야생 동물에 대해서는 광대하고, 인간이 없는 피난 장소가 만들어졌다. 이 지역의 동식물에게 방사성 강하물이 악영향을 가져왔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동식물은 인간에 비해 방사성 내성이 크게 다르고, 폭넓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강하된 주변에서의 생물의 다양성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역 일부의 식물이 돌연변이로 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고 그 때문에 기괴한 모습으로 된 식물이 있다고 하는 '이상한 숲'이나 '기괴한 숲'에 대해 소문이 발생하고 있다. 다른 보고에서는 이 구역은 침묵에 싸여 있고 아직껏 새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소문에 응하듯 4m 짜리 메기가 출현해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그 외에는 방사능 오염으로 돌연변이화된 동물들(개(블라인드 독), 돼지(플래시), 멧돼지, 들쥐, 늑대(시우도독)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편집] 사고 후의 체르노빌
체르노빌 사고 그 자체는 4호기의 참극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내 에너지 부족을 이유로 나머지 세개의 원자로 운전을 계속한다. 1991년에 2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정부 당국은 원자로가 수복 불능까지 손상되어 있다고 발표하며, 이를 전원 계통으로 떼어내버렸다. 1호기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IAEA와 같은 국제사회의 거래의 일부로서 1996년 11월에 퇴역시켰다. 2000년 11월에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3호기의 스위치를 잘랐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모든 원자로가 정지했다.
사고 당시 바로 사망한 직원의 사체는 아직 오염 구역에 있는데, 방사능 오염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석관 안에는 방사성 물질 확산 방지를 위해 특수 약재가 살포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외부로 유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편집] 보수의 필요성
석관은 이 경우에 효과적인 봉인 수단이 아니며, 단지 응급 처치일 뿐이다. 대부분은 산업용 로봇을 이용해 원격 조작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노후화가 현저하게 진행되었으며, 붕괴하게될 경우에는 방사성 동위체의 물보라가 비산하게 된다. 보다 효과적인 봉인책에 대해 많은 계획이 발안되며, 논의가 되었지만 현실화 된 계획은 하나도 없다. 국내외로부터 기부된 자금은 비효율적인 건설 계약, 엉성한 관리 또는 심지어 도난을 당하는 등으로 인해 낭비만 되고 있다.
연간 4,000kl 가까운 빗물이 석관 안에 흘러 들어가고 있어, 원자로 내부를 지나 방사능을 주변 토양에 확산시키고 있다. 석관 안의 습기가 석관의 콘크리트나 철근을 계속 부식하고 있다.
게다가,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 있던 연료의 대략 95% 정도가 아직도 석관안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 연료의 방사능은 대략 1,800만 퀴리까지 추정된다. 적어도 4톤의 방사성 물질이 아직도 석관내에 머무르고 있다.
[편집] 체르노빌 기금과 '셀터' 구축 계획
- '셀터' 구축 계획(SIP) : 이것은 현재 4호기를 봉인하고 있는 석관안에 있는 방사능 물질이나 오염된 기와조각, 돌 등을 '새로운 안전 봉인 설비'(NSC)라고 하는 아치 건설물을 이용해 삭제시켜 4호기 안에 있는 방사능을 제로화하기 위한 계획이다.
- 장점으로는 방사능을 방출하거나 물을 오염시키는 자제 등을 제거할 수 있다.
- 단점으로는 건설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비용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조).
- 체르노빌 셀터 기금 : 체르노빌 셀터 기금은 1997년 덴버에서 열린 G7 서미트에서 셀터 구축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SIP 추정 비용은 약 7억 6800만 달러(한화 약 9400억 원)이다.
- SIP의 관리 : SIP는 여러 기관에서 관리한다. NSC의 개념 설계는 높은 방사선량을 피하기 위해 셀터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일단 건설한 후 오염 지역에 다는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 NSC는 사상 최대의 가동식 구조물이 될 것이다.
[편집] 대중 인식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국제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체르노빌'이란 단어는 대중들의 인식에 다양한 모습으로 각인되게 된다.
[편집] 정치적 여파
체르노빌 사고는 분명히 대규모 재해였기 때문에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다. 원자력 위험에 대한 대중 인식은 크게 증가한다. 원자력 발전 찬성측과 반대측 단체가 대중의 의견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상자의 수, 원자로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 및 다른 원자로에 대한 위험 평가는 저자가 어느 쪽의 입장과 가까운 것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면 국제 연합 인도 문제 사무국에서 방사선 영향에 대한 간행물을 발표했는데, 국제 연합 과학 위윈회는 이걸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이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사고의 원인, 경과에 대해서는 소련 정부 수뇌부가, 또 현장 조직 등이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것은 보통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의 공포 정치를 기억하고 있던 소련인들이 자신의 '보신'을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 체질에 대해 알고 있던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철저하게 지도한다. 그러나 이 고르바초프의 움직임은 후에 소련의 8월 쿠데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편집] 체르노빌 바이러스
CIH 컴퓨터 바이러스는 많은 미디어들이 보통 '체르노빌 바이러스'라고 부르는데 이건 변종 v1.2가 매년 4월 26일, 즉 체르노빌 사고 날에 퍼지는 것과 연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날짜는 바이러스 작성자의 생일이 우연히 그날이었을 뿐이며 단순한 우연의 일치이다.
[편집] 체르노빌의 목걸이
방사선에 노출된 아이의 목이 남아 있는 붉은 상흔을 말하는데, 갑상선 암 적출에 따른 수술 자취가 목걸이를 닮아 있는 것에 유래한다. 덧붙여서 몸의 성장에 필요한 갑상선이 절제된 아이들은 갑상선 기능을 대신하는 약을 평생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편집] 관련 게임
- 2007년 3월에 THQ에서는 인류 대재앙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뒤에 찾아온 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FPS 게임인 S.T.A.L.K.E.R. :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이 제작되었고 대한민국에서도 정식 발매되었다. 2008년에는 후속작인 S.T.A.L.K.E.R. : 클리어 스카이도 발매되었고 현재 S.T.A.L.K.E.R. : 콜 오브 프리피야트가 제작중이다.
- 2007년 11월에 발매된 인피니티 워드의 1인칭 슈팅 게임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싱글 플레이 게임에는 사고 후의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를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가 등장한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국제원자력기구의 방사능 사고 분류 기준[1]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는 가장 심각한 수준인 레벨 7에 속해 있다.
- ↑ Peter Bleickardt; Steven Quirk, Bill Beegle. Introduction: History of Accidents? (영어). 2009년 6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현원복 (10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진상. 과학동아: 44-47. 2009년 6월 14일에 확인.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The explosion of the reactor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World Nuclear Association (2008년 5월). Chernobyl Accident (영어). 2008년 10월 3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바 Georgia State University. Chernobyl Chronology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바 Josh Baxter (2006년 12월 5일). Accidents Chernobyl#A Chernobyl type event could happen at any nuclear power station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이재기 (1996년 5월 6일 작성). “체르노빌 원전사고 10년의 회고” (HWP). 2009년 6월 14일에 읽어봄.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Amount of radiation released (영어). 2008년 10월 3일에 확인.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Type of radiation released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국제원자력기구 (IAEA). Frequently Asked Chernobyl Questions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엘레나 필라토바. “체르노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한겨레21 406호》, 2006년 4월 26일 작성. 2008년 10월 4일 확인.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Management of the disaster (technical aspects)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The Chernobyl Forum (2006년 4월 작성). “Chernobyl’s Legacy:Health, Environmental and Socio-Economic Impacts and Recommendations to the Governments of Belarus, the Russian Federation and Ukraine” (PDF). 2nd revised version. 국제원자력기구 (IAEA). 2008년 10월 4일에 읽어봄., P.10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Management of the disaster (humanitarian aspects) (영어).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2004년 9월 작성). “The Chernobyl Disaster”. 3rd. BBC. 2008년 10월 4일에 읽어봄.
- ↑ 로이터 통신. “Chernobyl haunts engineer who alerted world”, 《CNN》, 1996년 4월 26일 작성. 2008년 10월 4일 확인. 또한 이 기사에 따르면, 의복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은 포스막에서 발견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 ↑ Swiss Agency for Development and Cooperation. Chronology of key events. 2008년 10월 4일에 확인.
- ↑ 가 나 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05000/2006/04/021005000200604260606066.html 한겨레21 607호, 2006년 4월 26일 발행
- ↑ http://www.chernobyl.info/index.php?userhash=35881417&navID=11&lID=2
- ↑ 가 나 다 http://www.chernobyl.info/index.php?userhash=35881417&navID=7&lID=2
- ↑ [2], p.25
- ↑ http://www.who.int/ionizing_radiation/chernobyl/who_chernobyl_report_2006.pdf
- ↑ [3], p.23
- ↑ [4], p.24
- ↑ 가 나 http://www.chernobyl.info/index.php?userhash=35881417&navID=17&lID=2
- ↑ http://www.chernobyl.info/index.php?userhash=35881417&navID=5&lID=2
- ↑ http://www.chernobyl.info/index.php?userhash=35881417&navID=6&lID=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