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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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대신 카멜레온에 빗대기도 한다.

철새 정치인은 한국의 정치에서 정강과 신념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좇아 쉽게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을 말한다. 주로 야당으로 활동하다가 집권당으로 당적을 옮기거나 선거기간동안 집권이 유력한 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편집] 개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집권당측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회유하여 빼나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

2000년 이후에는 집권당에 입당하는 야당 정치인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여당을 탈당하여 집권이 유력한 야당으로 입당하는 정치인들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2002 대선 때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이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보다 지지율이 훨씬 낮았기 때문에 생존을 도모하여 당적을 옮기는 철새 정치인이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2002년 12월 그동안 지지율에서 밀리던 노무현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철새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후 벌어진 17대 총선에서 민의의 심판을 받아 낙선했기 때문에 철새 정치인이 설자리가 좁다는 것이 상식화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철새 정치인들의 행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하반기에는 대통합민주신당, 국민중심당의 몇몇 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가기도 하고, 한나라당에서도 이회창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탈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정치에서 철새 정치인이 많은 것은, 정치인들이 민의보다는 권력욕에 이끌려 정치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편집] 명단 목록

  • 이재오 :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민중당 창당의 주역이었으나 1994년 돌연 정치성향이 다른 신한국당에 입당한다. 당시 그는 신한국당 입당이 변절이라는 일부비판에 입당의 이유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후 그는 서울 은평(을)에서 연달아 3선에 성공했으나 2008년에는 창조한국당 문국현에게 패해 낙선했다. 그는 박근혜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시절 수석최고위원을 맡는등 대뇌외적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17대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당시 돌연 박근혜를 비판하는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며 이명박계의 대표주자가 된다. 이에 일부 친박계는 그를 변절자, 배신자라고 비판하였다.
  • 김문수 : 역시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이재오와 함께 민중당 창당의 주역이었으나 돌연 정치성향이 다른 신한국당에 입당하며 변절자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노동운동가 시절에 삼성에 대해 혹독히 비판했었으나 신한국당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 삼성을 찬양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연달아 국회의원으로서 3선에 성공한 뒤 2006년 지방 경기도 지사 선거에 나서 열린우리당진대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고, 2010년에는 야권 단일화 후보로 나선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을 상대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 손학규 : 6,70년대 김근태와 함께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였으나 돌연 1993년, 자신이 줄곧 비판하던 정치세력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변모되는 과정속에서도 연달아 3선에 성공했고, 문민정부 시절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2002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후 뛰어난 행정능력을 선보이며 차세대 대통령감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2007년 3월 돌연 자신이 13년간 머물러왔던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대통령 후보에 선출되기 위해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경선을 치른다. 그러나 그는 경선에서 정동영에게 패배해 대통령 선거에는 나가보지도 못하고 꿈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 김민석 : 30대 기수론, 차세대 정치인의 상징으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서울시장 후보로 공천되며 승승가도를 내달렸으나 한나라당서울시장 후보인 이명박에게 패배해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떠나 계속해 지지율이 상승하던 정몽준의 곁으로 떠나며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이후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며 철새 이미지에서 벗어나는듯 했으나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 약속을 깨고 노무현 후보를 배신하며 철새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각인되고 말았다. 이후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였으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 김혁규 : 김영삼 대통령 재직 중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다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995년 경상남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고, 1998년 한나라당(민주자유당 계승) 소속으로 재선되었고, 2002년 3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전격적으로 도지사직을 사퇴함과 동시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그 다음해 17대 총선의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의 열린우리당 입당은 국회 진출과 17대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저조한 지지율로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 계승) 경선에서 탈락했으며,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잃었다. 그리고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대선 후 이회창 중심의 자유선진당에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당 지도체제에 반발하여 참여하지 않았다.
  • 이규택 : 민추협 출신으로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여주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하여 그대로 잔류한채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시 통합민주당에서 몇 안되는 수도권 지역 의원이었으나, 총선 직후인 1996년 5월 돌연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하였다. 이규택 본인은 이후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탄생한 부분을 암시하며 자신의 프로필을 교묘하게 소개하고 있으나, 실제 이규택의 신한국당 입당은 엄연히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서 행한 것으로서 철새 행위가 맞다.
  • 최욱철 : 1993년 강원 명주·양양 재보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14대 의원을 지내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강원 강릉을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을 면담한 후 돌연 신한국당에 입당하였으며,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3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2001년 10월 25일 강릉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최돈웅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했고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국민통합 21 정몽준 캠프에 합류했었다. 이듬해에는 통합민주당 시절부터 노무현과 가까웠던 인연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2004년 17대 총선 강릉시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경선에서 패배하였고 이후 강원랜드 감사를 지내다가 18대 총선 강릉시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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