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에번스 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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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에번스 휴스

찰스 에번스 휴스(Charles Evans Hughes, Sr., 1862년 4월 11일 ~ 1948년 8월 27일)는 미국의 법조인·정치인이다. 19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후에 국무장관연방대법원장을 지냈다.

뉴욕 주 출신이다. 브라운 대학교컬럼비아 법학대학원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다. 코넬 대학교 법학대학원뉴욕 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05년 뉴욕 주의회에서 일했다. 1906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 주지사를 지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원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유명 언론인인 민주당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꺾고 주지사로 당선되어 그 이듬해부터 재직했다. 1908년 다시 당선되었으나 1910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 되어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1916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 공화당의 후보가 되어 연방 대법관을 사임하였다. 선거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문제가 큰 쟁점이었으며,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로 패했다. 1921년 ~ 1925년 워런 하딩캘빈 쿨리지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으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시기에 그는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워싱턴 해군 군축회의를 주재하고 여러 국가 사이의 조약 체결을 주선했다.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후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로 활동했다.

1930년 연방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휴스를 태프트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보수파에 속하는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의 뉴딜 정책의 진보화를 억제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전반적으로는 연방 권력의 확대를 지지했다. 1937년 대통령과의 사이에 진보주의자의 대법관 임명 문제와 관련된 대법원 확대 문제로 충돌이 있었다. 그 후 1941년 대법원장을 사임하고 은퇴했다.

전 임
베인브리지 콜비
제45대 미국 국무장관
1921년 ~ 1925년
후 임
프랭크 빌링스 켈로그
전 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제11대 미국 연방 대법원장
1930년 2월 24일 - 1941년 6월 30일
후 임
할란 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