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관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차오관화(喬冠華, 乔冠华, 喬冠華, 1913년 3월 28일 ~ 1983년 9월 22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 겸 외교관이다. 문화대혁명 말기에 제4대 외교부장을 지냈다.

약력[편집]

장쑤 성 출생. 독일에 유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일전쟁 와중에는 보도 관계 일을 했고, 1942년 가을부터 중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충칭시에서 신화일보(新華日報)의 국제 칼럼을 맡아서 썼다. 1946년 초순 저우언라이를 따라서 상하이에 갔다. 이후 신화통신 홍콩 지사장에 취임했다.

1951년 한국전쟁 정전 교섭에 참가한 관계로 김일성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저우언라이를 따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휴전에 관한 제네바 협정에 출석했다. 1971년 중국 첫 유엔 대표단 단장으로서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시에는 헨리 키신저와 교섭을 해서 미중 공동성명의 초안을 다듬었다. 1974년에 외교부장에 취임했다. 문화대혁명 직후인 1976년 11월 해임됐다. 전 북한 대사가 아들이다.

전 임
지펑페이
제4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1974년~1976년
후 임
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