쯩 자매
쯩 자매는 1세기 후한의 지배 하에 있던 베트남(당시에는 남비엣)의 반란을 주도한 쯩짝(徵側, 14년 ~ 43년)과 쯩니(徵貳, 14년 ~ 43년) 자매를 일컫는다. 베트남의 잔다르크라고도 불린다.
생애[편집]
쯩 자매는 쌍둥이로서, 14년 8월 1일, 빈푹 성(베트남어: Vĩnh Phúc/ 永福) 베트남어: Phong Châu/ 峯州 베트남어: Cô Lai/ 麋冷에서 지방의 토호인 베트남어: Lạc tướng/ 雒將의 딸로 태어났다. 언니인 쯩짝은 19세에 베트남어: Chu Diên/ 朱鳶의 유력자인 베트남어: Thi Sách/ 詩索(? ~ 39년)과 결혼했다.
한무제에게 점령당한 베트남에서는, 쯩자매가 한에게 지배되기 전에 락장이 가지고 있던 세금 징수권이 중국에 이관되고 있었는데, 쯩짝은 후한에 징세권을 베트남에 이관하도록 통고하였으며, 40년 3월, 꼬라이에 궁전을 짓고 실제로 징세를 시작하였다.
후한의 광무제는 이것을 중대한 반란 행위로 간주하여 복파장군 마원을 파견해 반란을 진압을 명한다. 마원은 군사 2만을 이끌고 42년 4월에 베트남에 도착한다.
악천후와 역병으로 행군은 지연되고, 마원의 군사는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베트남 병사들 사이에 전쟁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져서, 전투에서 대승하였다. 쯩 자매는 몸을 숨기지만 쫓아온 마원에게 잡혀 살해당해서 목이 낙양으로 보내진다.
| 베트남의 역사 | |
| 베트남의 선사 시대 | |
| 기원전 50만년 | 랑선 인 |
| 기원전 1000–100 | 동손 문화 |
| 고대 베트남 | |
| 기원전 2879–258 | 홍방 왕조 |
| 기원전 257–207 | 툭판 왕조 |
| 기원전 207–111 | 남비엣 |
| 기원전 111–39 | 제1차 중국의 베트남 지배 |
| 40–43 | 쯩 자매의 봉기 |
| 43–544 | 제2차 중국의 베트남 지배 |
| 544–602 | 전 리 왕조 |
| 602–938 | 제3차 중국의 베트남 지배 |
| 중세 베트남 | |
| 939–967 | 응오 왕조 |
| 968–980 | 딘 왕조 |
| 980–1009 | 전 레 왕조 |
| 1009–1225 | 리 왕조 |
| 1225–1400 | 쩐 왕조 |
| 1400–1407 | 호 왕조 |
| 1407–1427 | 제4차 중국의 베트남 지배 |
| 베트남의 근세 | |
| 1428–1527 | 후 레 왕조 |
| 1527–1592 | 막 왕조 |
| 1533–1788 1545–1787 1558–1777 |
후 레 왕조의 복권 - 찐 주 - 응우옌 주 |
| 1778–1802 | 떠이선 왕조 |
| 1802–(1945) | 응우옌 왕조 |
| 1858–1945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 베트남의 현대사 | |
| 1945–1975 | 베트남 민주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 |
| 1976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전설[편집]
베트남에 전승되는 전설에 따르면 쯩 자매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언니인 쯩짝의 남편, 티 사익이 후한의 태수인 쑤딩(蘇定, 또딘(Tô Định))에게 처형당하였기 때문이며, 티 사익은 부당하게 대우받는 베트남인을 위해 투쟁하였다고 묘사된다.
한편, 쯩 자매의 최후에 관해서도, 그들이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 핫 강(喝江, Sông Hát)에 투신했다는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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