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소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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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소양왕 또는 소왕(秦 昭襄王, 秦昭王, ? ~ 기원전 251년, 재위: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은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제28대 군주이자 제3대 왕이다. 혜문왕의 서자이며, 성은 (嬴),(稷)이다. 효문왕의 아버지이다.

생애[편집]

즉위 이전[편집]

기원전 306년, 무왕이 맹열(孟說)이라고 하는 힘이 샜던 장사와 주나라의 구정을 들어 힘자랑을 하였고, 경골이 부러지자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무왕이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 다툼이 일어났다.

공자 직은 당시 연나라에 있었지만, 조나라(趙)의 무령왕(武靈王)의 도움으로, 대군(代郡)의 재상 조고(趙固)에 의해 연나라와 조나라를 거쳐서 진나라에 귀국할 수 있었다. 진나라에는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위염(魏冉)등 신하들의 지원으로, 이복형 무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이후[편집]

재위 초기에는 선대 무왕의 신하였던 저리질(樗里疾), 감무(甘茂), 상수(向壽), 공손석(公孫奭)등이 정사를 도왔다.

기원전 306년, 초나라가 한나라(韓)을 토벌하였고, 한나라의 옹(雍)을 포위하였다. 그 때문에, 한나라는 공중(公仲)이라는 사람을 사신을 보내 감무에게 아첨하여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해 왔다.

감무는 소양왕에게, "한나라(韓)은 진나라가 아군으로 삼지 않으면, 뒤에 초나라와 동맹을 맺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위나라(魏)도 반드시 가담을 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3개의 나라가 동맹을 맺게 됩니다. 진나라는 3개의 나라가 이대로 동맹을 맺고, 진나라를 토벌을 하는 사태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초나라를 토벌하는 편이 유리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뒤에도 한나라는 장취(張翠)를 사신을 진나라에 보냈다. 장취는 날마다 진나라로 갔고, 마침내 소양왕과 감무와 회견했다. 이 회견으로 감무와 소양왕은 즉시 군사를 내었고 한나라를 구했다.

기원전 260년 소양왕은 조나라와의 장평 전투를 위해 군사를 징발하였다.

전 임
이복형 무왕
제28대 중국 진나라 군주
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
후 임
아들 효문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