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바티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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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중국바티칸 시국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바티칸 시국중화민국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다.

예수회에서 명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마테오 리치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이다. 청나라 초기까지 이들 선교사들과 청나라 조정의 관계는 양호한 편이었으며, 아담 샬 폰 벨은 서양의 천문과 역법 등을 중국에 전해주었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교령을 통해 중국인 천주교 신자들에게 제사에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하자 이에 강희제가 격분하면서 예수회의 전교 활동은 위축되었다. 이후 이 문제로 현지 선교사들과 로마 교황청 사이에 알력이 생기면서 옹정제는 천주교 포교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포교금지기간은 약 100년 정도였다.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는 궁중화가가 되면서 서양의 화법을 전달했으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등 세 명의 황제를 섬겼다. 신해 혁명 이후 1922년 교황청의 대표가 중화민국 베이징 시에 부임했으며, 1942년에 양국은 수교하였다. 1946년 중국교구가 설립되면서 난징 시에 주중 바티칸 대사관(라틴어: Nuntiatura Apostolica in Sinis)이 설치되었다. 1949년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며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베이 시로 옮겼다. 바티칸 대사 안토니오 리베리 주교는 1951년까지 중국 대륙에 주재하다 중국 공산당에 의해 추방당하여 동년 9월 6일 영국령 홍콩에 도착했으며, 다음 해에 타이베이 시로 갔다. 바티칸은 중화민국만을 승인했으며, 타이베이에 대사관을 두었다. 1967년 천주교 중국 주교단(1998년 이후 천주교타이완지구주교단으로 개칭)이 타이베이에서 결성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편집]

중화인민공화국과 성좌 사이에는 정식 외교 관계가 없다. 또한, 성좌의 입장 자체가 반공주의적이며, 종교를 국가의 통제하에 두려는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수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대륙 내의 주교 임명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하고 있으며 바티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시기 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접촉을 시작하였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 즉위이후 국교 수립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2006년중화인민공화국의 관영 천주교 단체 중국천주교애국회를 통해 주교를 임명함으로써 다시 관계가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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