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태 (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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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周泰, ? ~ 229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유평(幼平)이며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하채현(下蔡縣) 사람이다.[1] 손권이 나중에 주태의 공을 치하하며 한 말에 따르면, 출신이 한미했다.[2]

이름 주태(周泰)
시대 후한 ~ 삼국 시대
생몰  ? ~ ?
유평(幼平)
본관 · 출신 양주 구강군 하채현
관직 별부사마(別部司馬) 〔손책〕
→ 춘곡장(春穀長) 〔손책〕 → 의춘장(宜春長) 〔손책〕
→ 유수독(濡須督) · 평로장군(平虜將軍) 〔손권〕
→ 한중태수(漢中太守) · 분위장군(奮威將軍) 〔손권〕
작위 능양후(陵陽侯)〔손권〕
소속 손책손권

생애[편집]

처음에 장흠(蔣欽)과 함께 손책(孫策)의 측근이 되었다. 손책이 회계태수 왕랑을 무찌르고 회계군을 점유하면서 별부사마가 되어 병사를 받았다.[3] 손권(孫權)과 주태가 처음 조우했는데 손권이 주태의 풍채를 마음에 들어하여 형에게 주태를 달라고 요청했다. 손책이 육현(六縣)의 반란을 토벌하러 간 차에, 주태는 손권과 함께 천 명이 되지 않는 병사를 이끌고 선성(宣城)을 지키다가 방어 태세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월 수천 명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았다. 손권은 목숨의 위험을 받았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였으나, 오로지 주태만이 용감하게 손권을 지켜냈고, 손권의 측근들도 주태로 말미암아 함께 싸워 마침내 적을 물리쳤다. 주태는 이 싸움에서 열두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손책에게 사례로 춘곡[4]장(春穀長)에 임명되었다.

건안 4년(199년), 손책을 따라 여강태수 유훈의 본거 환성(皖城)을 쳤고, 또 유훈을 구원한 강하태수 황조를 치는 데에도 종군했다. 손책 군이 귀환 중에 예장에 들르면서 의춘[5]장(宜春長)에 임명되었다.[1]

손책이 죽고 손권이 강동을 물려받은 후, 손권을 따라 황조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적벽 전투에서 주유, 정보를 따라 조조 군을 막아냈고, 이어지는 남군의 조인 공격에도 참전했다. 형주 평정 후에는 잠(岑)에 주둔했다. 217년 조조가 유수(濡須)를 침공하자 주태는 유수로 와서 조조를 막아냈고, 조조가 물러난 뒤에도 남아 유수독이 되었으며 평로장군(平虜將軍)이 되었다. 이 즈음 같이 주둔한 서성(徐盛), 주연(朱然) 등의 장수들이 주태에게 복종하지 않자, 손권은 잔치 자리에서 주태의 옷을 벗게 하고 상처 자국을 일일이 가리키면서 옛 일을 회상하고 공적을 기려 자신이 쓰던 푸른 덮개를 쓰도록 하여 문제를 해결했다.[2] 손권이 형주를 차지한 후, 나아가 촉을 침공하려고 하면서, 주태는 한중태수(漢中太守) · 분위장군(奮威將軍)에 임명되고 능양후(陵陽侯)에 봉해졌다. 황무(黃武) 연간(222년 ~ 229년)에 세상을 떠났다.[1]

가족 관계[편집]

  • 주태
    • 주소 (아들)
    • 주승 (아들)

《삼국지연의》에서의 주태[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장흠과 함께 장강 일대에서 양민들의 재물을 터는 도적 출신으로 나온다. 손책이 강동을 차지하기 위해 유요(劉繇)를 공격할 때, 장영(張英)의 진영을 급습하고 손책의 부하가 되었다. 손권과 함께 선성을 지키다가 많은 상처를 입었을 때, 화타(華陀)의 치료를 받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회복했다.

조조(曹操)가 형주를 점령한 후 손권을 공격하려 하자, 한당(韓當)과 함께 출진하여 장남(張南)을 죽였다. 적벽 전투에서 조조를 물리친 후 남군을 공격할 때에도 용맹스럽게 싸워 공을 세웠다.

손권이 군사를 일으켜 환성(晥城)을 점령하고 합비를 공격했으나, 도리어 장료에게 대패하여 위기에 처했다. 주태는 단기로 적군 속에 뛰어들어 손권을 구해낸 다음 포위당한 서성까지 구해냈다. 손권은 잔치를 열고 이 싸움에서 부상을 많이 입은 주태의 상처를 가리키면서 전공을 기렸다. 조조와 화의가 이루어진 후 장흠과 함께 유수구를 지켰다. 이후 여몽이 형주를 점령하고 이릉에서 촉군을 격파할 때에도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주석[편집]

  1. 진수, 《삼국지》 권55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2. 《강표전》 (진수, 《삼국지》 권55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3. 회계를 치기 전에 손책의 별부사마가 된 장흠보다는 약간 늦은 것이다.
  4. 단양군의 속현
  5. 예장군의 속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