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셀리누 쿠비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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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셀리누 쿠비체크

주셀리누 쿠비체크 지 올리베이라(포르투갈어: Juscelino Kubitschek de Oliveira, 1902년 9월 12일 ~ 1976년 8월 22일)는 브라질의 정치인이다. 1956년 ~ 1961년 대통령으로 재직하며, 신행정수도 브라질리아 천도를 단행하였다.

생애[편집]

미나스제라이스 주 지아만치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보헤미아(체코) 출신으로, 지아만치나 초기 개척자 중 하나였으며, 쿠비체크라는 성도 그에 유래한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외과 전공 과정을 밟았다.

브라질로 돌아와 군의관으로 재직하다가 정계에 입문, 미나스제라이스 주 대표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벨루오리존치 시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재직 중 인공호수 팜풀랴 호의 건설 등 성공적인 도시 기반 시설 확충으로 주목받았다. 1950년 ~ 1955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로 재직하며, 사회간접시설 확충, 공장 설립 등에 주력했다.

1955년 사회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50년의 진보를 5년에'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규모 내륙 개발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그 이듬해 초 취임한 후 곧 브라질 고원의 광대한 미개척지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 일대 횡단 도로를 개설하고, 농토를 개척하였으며, 그의 재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인 신행정수도 브라질리아 건설을 단행했다.

기존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기득권 세력의 큰 반발에도 단기간에 수도 건설 계획을 실행하여, 1960년 수도를 브라질리아로 옮겼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 비용 조달과 여러 가지 사정이 악화돼 인플레이션 문제를 초래했으며, 그의 정부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후에 군사 정부 출현의 한 배경이 됐다.

1961년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났으며, 그 후 상원의원이 됐다. 국민의 인기가 높아 1965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할 계획을 세웠으나, 1964년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군사 정권은 그가 옛 정권의 인물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이에 그는 미국유럽으로 망명했다가 1967년 정치 활동 금지가 풀려 브라질로 돌아왔으나, 정계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은행가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다.

1976년 리우데자네이루 부근의 헤젠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이 사고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례식 때는 군사 정부의 삼엄한 경비 속에 수십만명의 애도객이 리우데자네이루와 브라질라이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군사 정권이 무너진 후 브라질 각지에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는 시설물이 많이 들어섰다.

그는 경제 사정을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받지만, 브라질 현대화의 아버지로 브라질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전 임
네레우 지 올리베이라
제25대 브라질의 대통령
1956년 ~ 1961년
후 임
자니우 쿠아르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