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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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두(種痘)는 천연두를 예방할 목적으로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일을 가리킨다. 흔히 종두는 1796년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한 인공 면역법을 가리킨다.

종두에는 인두법에드워드 제너의 인공 면역법(또는 종두 접종법)에서 기원하는 우두법(또는 우두 접종법)이 있다.

용어의 뜻과 기원[편집]

인두법(人痘法)은 면역 물질을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서 얻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우두법(牛痘法, cowpox)은 면역 물질을 소마마를 앓는 소에게서 얻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인두법은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며[1], 12세기 무렵에 중국 송나라에서 발견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동아시아를 비롯한 중국과 교류가 있던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18세기 말 제너가 우두법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서양에서도 인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하려고 했다. 또한 18세기 무렵 중국 청나라에서는 종두법이 한의학의 한 분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1796년 제너가 우두법을 발견한 뒤로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10년이 채 되지 않은 19세기 초에는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종두와 한국[편집]

한국에는 조선 시대인 18세기 말에 박제가에 의해 인두법이, 1830년대에 우두법이 알려졌다. 다만 인두법에 따른 접종을 많은 한의사가 실시하였으나, 우두법에 따른 접종은 그 뒤로도 실시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때 정약용이 우두법에 따라 종두를 접종했다는 설이 퍼지기도 했으나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못하였다. 현재까지 최초의 우두 접종자로 지석영, 이재하, 최창진, 이현유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모두 한의사이다), 특히 지석영과 이재하가 유력시되고 있다.

인두법은 우두법이 들어오기에 앞서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 1886년에 의사 알렌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서울 거주자 100명 가운데 60~70명이 (인두법에 따른) 종두 시술을 받았다. 우두법이 1879년에 들어왔지만 인두법에 비해 널리 퍼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주석[편집]

  1. 천연두와 제너, 그리고 지석영, 《한겨레21》, 2004.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