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디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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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디마지오
Joe DiMaggio
DiMaggio cropped.jpg
기본 정보
국적 미국 미국
생년월일 1914년 11월 25일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마티네즈
사망일 1999년 3월 8일 (84세)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외야수
첫 출장 MLB / 1936년 5월 3일
구장명 대 상대 팀
경력
미국 야구 전당
Empty Star.svg Empty Star.svg Empty Star.svg 전당 수상자 Empty Star.svg Empty Star.svg Empty Star.svg
득표율 88.84% (첫 번째 투표)

조지프 폴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 1914년 9월 25일 ~ 1999년 3월 8일)은 전 메이저 리그 야구 뉴욕 양키스의 선수이다.

메이저 리그 야구 기록인 56 경기 연속 안타와 영화 배우 마릴린 먼로의 연인으로 유명하다.

생애[편집]

이탈리아계 이주민으로서 형이었던 빈스 디마지오와 동생인 돔 디마지오와 함께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활약한 그는 1914년 출생하여 1930년대부터 PCL의 샌프란시스코의 한 팀에서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하였다. 33년 그곳에서 61경기 연속안타 기록으로 매스컴과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끌면서 명문구단들의 스카웃경쟁이 불이 붙었고, 뉴욕 양키스와 1934년 입단계약을 맺게 되었다. 당시 무릎부상으로 바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진 못하였지만, 36년이 되자 당시 양키스의 주전 중견수 얼 콤스가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본격적인 메이저 리그 야구 생활에 시동을 걸었다.

메이저 리그 시절[편집]

21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마이너 리그와 세미프로팀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였기에 데뷔 첫해 타율.325와 29홈런, 125타점,132득점으로 공격전부문 상위권에 오르며 MVP후보까지 올랐고, 그해 올스타에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듬해인 37년 양키스 팀역대 우타자 최다기록이기도 한 46개의 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 또한 장타율 1위, 타율 2위(.346), 타점 2위(167타점), 득점 1위(151득점)등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부문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였지만, 이해 타율.371로 타격왕에 오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인 찰리 게링거에게 MVP상을 양보하게 되었다.

39,40년 각각 타율.381과 .350으로 2년 연속 리그 타격왕에 올라서며 루 게릭이 은퇴한 후 팀내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였고, 특히, 39년에는 자신의 첫 MVP수상과 함께 신시네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1941년 5월 15일부터 시작하여 7월 1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56경기 연속안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하여, 1887년 볼티모어의 윌리 킬러의 44경기 연속안타와 현대야구가 자리잡기 시작한 이후 최장 기록인 조지 시슬러의 4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달성하였다. 9회초 마지막경기에서 그가 친 바운드가 큰 땅볼성 공이 클리블랜드의 3루수 켄 켈트너의 글러브에 들어가며 어렵게 송구한 끝에 간발의 차이로 아웃되자 57경기 연속안타행진은 볼 수가 없었고, 이 경기후 다시 27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였으나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안타행진은 없었다.

이해 MVP는 4할의 타율을 친 테드 윌리엄스와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신사적인 매너와 조용한 성격으로 기자들에게 좀 더 인기가 있던 디마지오에게 돌아가며 자신의 두 번째 MVP를 수상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행크 그린버그밥 펠러로부터 시작된 메이저리그 스타선수들의 군입대로 그 역시 3년이 넘는 기간동안 야구장을 떠나게 되었고, 46년이 되어서야 다시 양키스 구장을 찾을 수 있었다. 긴 공백기간으로 인해 그는 처음으로 2할대 타율로 추락하였고, 팀 역시 보스턴과 디트로이트에 10경기 이상 쳐지며 리그 3위에 머물렀지만, 이듬해 다시 3할대로 복귀하여 신인 포수 요기 베라와 함께 팀공격을 이끌어 나가며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정상을 차지하자 개인성적에서 자신을 모두 앞섰던 테드 윌리엄스를 제치고 세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되었다.

48년 39홈런과 155타점으로 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 4번째 개인 MVP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클리블랜드의 감독겸 선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시킨 루 부드로에게 압도적인 표가 몰려 최초의 4회 MVP수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발꿈치 부상과 다리 부상으로 49년 시즌 절반을 결장하고 50년 자신의 9번째 +100타점을 기록한 후 1951년을 끝으로 팀 후배인 미키 맨틀에게 중견수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편집]

통산타율.325와 389홈런, 1,537타점을 올린 그는 통산 BB/S0=2:1의 비율로 장타자답지 않은 선구안과 정확한 타격을 가지고 있었다. 은퇴 이후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로 그녀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결국 이혼까지 하였고, 영원히 그녀만을 사랑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1999년 세상을 떠났으며 1955년 88.8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통산 성적[편집]

년도 경기 타석 득점 안타 홈런 타점 볼넷 삼진 타율 장타율
1936년 138 637 132 206 29 125 24 39 .323 .576
1937년 151 621 151 215 46 167 64 37 .346 .673
1938년 145 599 129 194 32 140 59 21 .324 .581
1939년 120 462 108 176 30 126 52 20 .381 .671
1940년 132 508 93 179 31 133 61 30 .352 .626
1941년 139 541 122 193 30 125 76 13 .357 .643
1942년 154 610 123 186 21 114 68 36 .305 .498
1946년 132 503 81 146 25 95 59 24 .290 .511
1947년 141 534 97 168 20 97 64 32 .315 .522
1948년 153 594 110 190 39 155 67 30 .320 .598
1949년 76 272 58 94 14 67 55 18 .346 .596
1950년 139 525 114 158 32 122 80 33 .301 .585
1951년 116 415 72 109 12 71 61 36 .263 .422
통산성적 1736 6821 1390 2214 361 1537 790 369 .325 .579

바깥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