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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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1839년 12월 5일 ~ 1876년 6월 25일)는 남북전쟁 당시 활약한 미국의 군인이다. 현재로서도 그의 인간적 면모나 전쟁에서의 공훈, 심지어 죽게 된 경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견이 존재하는 유명한 인물이다.
오하이오 주 뉴럼블리(New Rumbly)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을 미시간 주 먼로(Monroe)에서 자신의 이복동생과 함께 보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육군사관학교(West Point)로 진학하지만, 학업성적은 동기생 34명 중 최하위를 차지할 정도로 신통치 못하였고 졸업하기 며칠 전, 당직 근무를 서면서 후배 사관 후보생들 간의 싸움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단 한 명의 인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 되자 운좋게 풀려나게 된다.
미육군사관학교에서의 신통찮던 성적을 만회라도 하듯, 남북 전쟁에서는 수많은 공로를 쌓게 되고, 그가 속한 기병대는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을 격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서부에 원정과 원주민 토벌에 주로 참여하였지만 1876년 6월 25일 리틀빅혼 전투에서 원주민 연합군에게 패배해 전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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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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