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궁중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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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궁중음식(朝鮮王朝宮中飮食)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차리던 음식으로 전통적인 한국 음식을 대표한다.

종류[편집]

평상시[편집]

영조실록에는 왕의 식사횟수에 대하여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예부터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영조는 하루에 세번만 상을 받았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7차례의 음식상을 받은 기록이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궁중에서 일상식은 초조반상,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 점심의 낮것상의 네 차례 식사로 나뉘며, 야참이 포함되기도 한다. 아침과 저녁의 수라상은 12가지 반찬이 올라가는 12첩 반상 차림으로, 대원반과 곁반, 모반의 3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라상[편집]

수라상에는 백반과 홍반(팥물반)의 밥과 12가지 찬, 그리고 국, 찜, 조치, 김치, 장류가 큰 둥근 상에 올라갔다. 그 옆에는 불을 쓰는 전골상을 차린다.

초조반상[편집]

7시 이전의 이른 아침에 먹는 초조반상은 탕약을 들지 않는 날에 올렸기 때문에 보양이 되는 미음이나 응이, 죽과 같은 유동식과 함께 마른 찬을 차렸다. 죽으로는 흰죽, 잣죽, 타락죽, 깨죽, 흑임자죽, 행인죽 등을 올렸고, 미음으로는 차조와 인삼, 대추, 황률을 고아 만든 차조미음과 찹쌀과 마른 해삼, 홍합, 우둔고기로 만든 삼합미음을 올렸다. 응이는 율무, 갈분, 녹말, 오미자 등으로 만들어 올렸다. 초조반상은 죽이나 미음을 담은 합과 함께, 어포나 육포, 자반, 북어보푸라기로 된 두세 가지 마른 찬, 나박김치나 동치미 같은 두 세가지 국물김치와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간을 한 맑은 조치를 찬품으로 올렸다. 여기에 죽의 간을 맞출 소금, 꿀, 청장 등을 종지에 담고, 덜어먹을 빈 그릇도 놓았다.

낮것상[편집]

낮것상은 간단한 미음과 죽을 차렸으며 손님이 올 경우 면상을 차려 국수장국을 대접하였다. 낮것상은 상이 넓은 이유는 왕(태자)를 위하여 여러가지 음식이 있으므로 넓은 것이다. 궁중 요리에서는 왕(태자)이나 왕비 등이 식사를 하기 전, 기미 상궁이 기미를 한다. 기미란 왕(태자)이 먹기 전에 먼저 맛을 보는 것이다. 기미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음식에 독이나 다른 좋지 않은 것이 들어있는 경우, 기미를 해서 왕(태자)이 먹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다.

연회시[편집]

3일간 잔치가 진행되는 연회때에는 미수상(술안주상), 다소반과상, 진어상 등의 음식이 차려졌다.

궁중음식의 전수[편집]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후 궁중에서 먹던 요리는 민간으로 전수되었다. 궁내부 주임관 및 전선사장으로 있었던 안순환은 이금의 음식과 각종 연회의 요리를 만들었었는데, 대한제국이 망할 지경에 이르자 1909년 세종로에 명월관이라는 요릿집을 차렸다. 명월관은 대한제국의 고관과 친일파 인물들이 출입하였다. 1918년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안순환은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식으로 유명해진 태화관을 개점하였다. 당시 의친왕과 민병석, 박영효의 자제, 그리고 이완용과 송병준의 자제들이 출입하였다. 일제의 압력으로 태화관을 폐점한 안순환은 남대문 1가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식도원이라는 음식점을 새로 내었고 동경 유학생, 문인, 언론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다. 이때 번영로, 이광수, 김억, 김동인, 이상범, 노수현 등이 드나들었다. 임금님만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특권을 가진 일반인들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

대중화된 궁중음식은 1960년대까지 창덕궁 낙선재에 거주하였을 때 생존한 왕족과 궁녀들의 구전, 주방 상궁, 대령숙수들이 전해준 것들이다. 4명의 궁중내인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는데, 그중 한희순은 어려서부터 주방에서 일하던 상궁이었다. 1970년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하고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전수관으로 지정하였다. 한희순이 1대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그 제자 황혜성이 2대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한복려는 황혜성의 딸로 기능을 전수받았다.[2]

일상식[편집]

  • 초조반(初朝飯)
  • 수라상(水刺床)
    • 조반(朝飯)
    • 석반(夕飯)
  • 낮것상
  • 야참

출처[편집]

주석[편집]

  1. 주영하, 음식전쟁 문화전쟁, 사계절 2000년
  2. 박준범, 조선의 상징거리 주작대로를 발견하다, 문화재 사랑 2009.08,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