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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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第五共和國)은 1979년 10·26 사건12·12 쿠데타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공화국이다.

10·26 사건으로 새로 등장한 이른바 신(新)군부 세력은 1979년 12월 12일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차지하였고(12·12 쿠데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신군부 세력은 7년 단임의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선출하는 헌법을 공포하였고,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는 다시 좌절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정의 사회 구현, 복지 사회 건설 등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으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여 얼마 안 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제5공화국은 그 운명을 다한다.

목차

[편집] 성립배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급서한 이후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 최규하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였으나 곧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이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였고, 1980년 9월 1일 유신헌법의 절차에 따라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0월 27일에는 대통령 임기 7년에 중임을 금지하는 제5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1년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으로 전두환이 취임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모처럼 민주주의에의 희망에 부풀어 있던 국민들은 갑작스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을 인정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대규모 항쟁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에 전두환 정권은 <정의 사회 구현>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3S'(Sports, Screen, Sex의 약자로서 각종 프로-전문체육-경기나 올림픽 등을 뜻함)로 돌리려 했으나 계속되는 인권 유린과 극심한 부정 부패, 권위주의적 독재 등으로 인해 끊임없는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편집] 전개

12대 대통령 취임 후에 대통령 전두환박정희 정권을 전면 부정하였다. 박정희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그는 헌법에서 소위 "5.16 혁명정신"에 관련된 사항을 삭제하였다. 또한 하나회 계열에 부정적인 공화당 실세들을 권력형 비리 혐의로 엮어서 제거하고, 박정희의 시대를 부정과 부패, 비리의 시대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정의사회 구현을 추구한다고 선언하였다.[1] 또한 대통령 연임제를 철폐하고 대통령 단임제를 실시하였다. 제5공화국은 김영삼, 김대중 등을 비롯한 주요 야당 인사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채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의 이른바 관제야당을 내세워 정당정치를 형식화하였다.

정권 성립 과정에서 발생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으로 재야인사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정의사회 구현, 복지사회건설 등을 정부의 기치로 내세웠고 물가안정, 범죄소탕, 경제 성장, 서울올림픽 개최 준비 성공, 무역흑자 달성 등을 이룩하였다. 그와 함께 국민들에 대한 유화책으로, 야간통행금지 해제, 중고등학교 교복 자율화 등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5.18 이후 정권적 차원에서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김대중 등을 가택연금하였는데 1983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3주기를 맞이하여 전두환 정권의 야당인사 탄압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23일간 단식투쟁을 시도하기도 하였다.[2]

1985년 정치활동 금지에서 해제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신한민주당이 창당되고 전두환 내각에 의해 부패정치인으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되었던 구 민주공화당계 인사들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정치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뒤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제1야당으로 떠오르자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어졌으며, 이에 제5공화국 정권은 시민들과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고 금강산 댐 사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등을 이용하여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1986년 당시 부천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당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있었다.

[편집] 몰락

1987년 1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대학생들의 시위에 참가했던 이한열최루탄에 맞아 숨지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들에 의해 일어난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노태우에 의해 발표된 6·29 민주화선언에 의해 제5공화국 헌법이 개정되고, 새 헌법에 따라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88년 2월 취임하면서 제5공화국은 종료되었다.

[편집] 역대 총리

# 이 름 임기
서리 유창순(劉彰順) 1982년 1월 4일 - 1982년 1월 22일
제15대 유창순(劉彰順) 1982년 1월 23일 - 1982년 6월 24일
서리 김상협(金相浹) 1982년 6월 25일 -1982년 9월 20일
제16대 김상협(金相浹) 1982년 9월 21일 - 1983년 10월 14일
서리 진의종(陳懿鍾) 1983년 10월 15일 - 1983년 10월 16일
제17대 진의종(陳懿鍾) 1983년 10월 17일 - 1985년 2월 18일
권한대행 신병현(申秉鉉) 1984년 11월 7일 - 1985년 2월 18일
서리 노신영(盧信永) 1985년 2월 19일 - 1985년 5월 15일
제18대 노신영(盧信永) 1985년 5월 16일 - 1987년 5월 25일
서리 이한기(李漢基) 1987년 5월 26일 - 1987년 7월 13일
서리 김정렬(金貞烈) 1987년 7월 14일 - 1987년 8월 6일
제19대 김정렬(金貞烈) 1987년 8월 7일 - 1988년 2월 24일

[편집] 읽어보기

[편집] 주석

  1. 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책세상, 2000) 112~113쪽.
  2. 김영삼 - Dau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