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딘 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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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 페라로

제럴딘 앤 페라로(영어: Geraldine Anne Ferraro, 1935년 8월 26일 ~ 2011년 3월 26일)는 미국의 여성 정치인이다. 1984년 대통령 선거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양대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 인물이다.

뉴욕 주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메리마운트 맨해튼 대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야간에 포드햄 대학교 법과대학원을 다녀 1961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4년 퀸스의 검사로 임명되었고, 정계에 인연을 맺어 1978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다. 이후 1980년·1982년 재선되었다. 하원의 여러 위원회에서 경력을 쌓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1983년 민주당 하원 위원회 서기로 일하며 대통령 선거를 대비하여 활발한 선거 운동을 했으며, 월터 먼데일 대통령 후보는 그를 부통령 후보로 전격 지명, 여성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당선 가능성 있는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먼데일-페라로 조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부통령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패했다.

그 후 페라로는 자신의 인생과 정치 역정을 회고한 저서를 출판하여 큰돈을 벌었다.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정계 복귀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4년 ~ 1996년 국제 연합 인권위원회 대사를 지냈다. 1990년대 후반 다발성골수종(혈액암) 진단을 받아 몇 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원한다고 밝혔으며, 그 인연으로 힐러리 클린턴 후보 선거운동진영의 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며 자금 모금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8년 3월, 언론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백인이었다면 지금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다. 페라로는 1984년 선거 때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라 했으나, 인종차별 논란이 계속되자 위원장직을 사임하였다.[1] 그 후 페라로는 다발성골수종으로 다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2010년 11월, 중간선거 기간에 그의 뒤를 이어 여성으로는 사상 두 번째로 양대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던 세라 페일린폭스 뉴스 채널에 함께 출연하기도 하였다[2]. 그의 건강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2011년 3월 26일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하버드 대학교 부속 매사추세츠 제너럴 병원에서 75세로 사망하였다[3].

주석[편집]

  1. '인종차별 발언' 힐러리 자금모금책 사임동아일보 2008년 3월 14일
  2. Ferraro And Palin — Most Exclusive Club Down To One Member : It's All Politics : NPR NPR.
  3. 미국 첫 여성 부통령 후보 페라로 타계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조선일보 2011년 3월 27일